[학폭 대책 발표]
사소한 다툼에 변호사 상담 받아
친구 마음에 안들면 ‘신고’ 협박도
“단톡 참여 줄이고 함께 운동 꺼려”
인천 부평구에서 고1 아들을 키우는 한 학부모는 “아이 학교에서 남학생 두 명이 싸웠는데, 아이들끼리 서로 화해한 뒤에도 부모들이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고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그는 “사정을 들어보니 혹시라도 나중에 상대편에서 학교폭력(학폭) 문제를 제기할까봐 걱정돼 미리 대비하려 그랬다고 한다”며 혀를 찼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을 계기로 학폭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가운데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과 학부모의 일명 ‘학폭 연루 포비아(공포증)’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어떻게든 학폭과 연루되는 것을 막고 불이익을 입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반응하는 학생,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일부 학생은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에게 “너를 학폭 가해자로 신고하겠다”며 협박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자녀가 서울 A중 1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부모는 “학교에 장애 학생이 있는데 그 학생이 급식 줄에 새치기를 하려다가 친구들에게 주의를 받았다. 그러자 그 학생이 ‘너희들을 학폭으로 신고하겠다’고 말했다더라”고 전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해자가 안 되려면 먼저 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도 돌고 있다. 초6, 초4 자녀를 둔 학부모 권모 씨(46)는 “초교 아이들은 사소한 말다툼도 학폭으로 신고당하는 경우가 있다”며 “아이들이 어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먼저 신고를 하는 쪽이 유리하다고 부모들이 말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학폭에 연루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의사 소통도 줄이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한모 양(17)은 반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대화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한 양은 “자칫 문제 소지가 될 말을 하거나 사진을 잘못 올리면 사이버 학폭으로 걸리기 때문에 조심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아예 사이버 학폭을 막기 위해 ‘학생들끼리 단톡방을 개설하지 말라’는 공지도 내렸다.
이처럼 학생과 학부모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결국 입시 때문이다. 경기 안양시에서 고1 자녀를 키우는 김모 씨는 요즘 자녀에게 “친구들에게 불쾌한 장난은 아예 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김 씨는 “자칫 학폭으로 몰리면 대입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학생들은 서로 운동하고 놀다보면 몸이 부딪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마저도 학폭으로 걸리까봐 아예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정 변호사 아들 사건 이후 주변에서 다들 그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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