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飛’는 2023년 4월 11일 강릉 산불로 유명을 달리한 주민의 명복을 빌며, 이재민 여러분의 빠른 일상 회복을 기원합니다.
강릉 산불은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산불은 담뱃불이나 실화(失火)처럼 사람이 잘못한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나무가 부러질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었고, 실제로 나무가 부러지면서 전신주를 건드렸고, 고압선이 끊어지면서 튄 불꽃이 화마로 커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상청과 소방청이 낸 자료를 보면 이날 강릉에는 최대 풍속이 초속 30m에 이르는 강풍이 불었습니다. 단위를 바꾸면 시속 100km가 넘는 매우 강한 바람입니다.
뉴스나 각종 매체를 통해서 이번 산불이 커진 원인이 ‘푄현상’, ‘양간지풍’이라는 분석을 보셨을 겁니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공기가 산을 타고 오르면 온도가 떨어지고, 공기 중에 섞여 있던 수증기가 안개, 비 같은 형태로 분리됩니다. 이처럼 수증기가 비나 안개로 바뀌는 과정에서 수증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열로 내뿜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는 공기가 처음 산을 타기 시작하는 낮은 고도에서보다 기온이 덜 내려가게 됩니다.
통상 고도가 100m 높아지면 기온이 1도씩 떨어지는데, 수증기를 떨어뜨리는 (포화 상태인) 공기는 고도가 100m 높아져도 그 절반 수준인 0.5도씩만 떨어집니다. 이렇게 충분히 수증기를 분리한 공기가 산을 내려가기 시작하면 다시 100m마다 1도씩 기온이 올라갑니다. 공기 중 수증기량은 줄었는데 기온은 올라가니 공기는 뜨겁고 건조해집니다. 이게 ‘푄현상’입니다.
● 왜 강릉만 강풍?
다만 이 같은 푄현상만 가지고는 강릉 지역에 불었던 강풍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남쪽에 고기압, 북쪽에 저기압이 위치하면서 우리나라에 강한 바람이 부는 통로가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전국에 강릉과 비슷한 수준의 강풍이 불었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날 강풍 경보가 내려진 지역은 강원 영동 지역에 집중됐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태백산맥의 꼭대기 부근에 탄탄한 ‘공기의 벽’이 생겼고 이 벽이 바람이 흐르는 틈을 좁게 만들면서 ‘덜 강한 바람’이 ‘매우 강한 바람’으로 바뀌게 만든 겁니다. 이 ‘공기의 벽’을 ‘역전층’이라고 부릅니다. 역전층이 생긴 공간에는 공기가 움직이지 않고 버티면서 다른 공기가 섞이지 않도록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표면에서 고도 약 12~13km까지는 높아질수록 온도가 낮아집니다. 아래쪽에는 따뜻한 공기가 위로 아지랑이처럼 올라가고, 위에 있는 찬 공기는 무거워서 아래로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복잡하게 어우러지면 우리가 말하는 ‘날씨’가 됩니다. 그런데 특정 고도나 장소에서 따뜻한 공기가 찬 공기 위로 올라타는 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위아래로 섞이는 공기 움직임이 막힙니다. 기온이 거꾸로 쌓인 이 현상이 바로 ‘역전층’입니다.
강릉에 산불이 발생한 날 한반도에는 남서쪽에서 따뜻하고 다소 습한 바람이 불어들었습니다. 반면 높은 하늘에서는 북쪽 저기압 영향으로 찬 공기가 밀려왔습니다. 평지가 많은 한반도 서쪽에서는 이 두 공기가 뒤섞이면서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태백산맥이 많은 동쪽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산을 타고 오른 ‘남쪽 출신’ 따뜻한 공기가 충분히 차가워지지 못 한 채 위쪽 찬 공기 위로 올라타버리면서 산 정상에 ‘역전층’을 스스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그다음, 산 밑에서 올라오는 공기가 이 역전층과 산꼭대기 사이의 좁은 공간을 통과한 뒤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강풍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강한 바람이 강릉 산불을 더욱 강하게 키운 원인이 됐습니다.
● ‘양간지풍’은 왜?
태백산맥을 넘는 강한 바람 중 강원 영동 중북부에서 부는 바람은 ‘양간지풍’이라는 이름을 따로 갖고 있습니다. ‘양양’과 ‘간성(고성)’의 앞 글자를 딴 이름입니다. 길고 긴 태백산맥 중 이 지역 바람만 이름이 따로 붙은 이유는 바로 지형 때문입니다.
한반도 산맥은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많은 산맥 줄기가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사이에 있는 골짜기들이 바람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이번처럼 남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은 이 산맥들 사이 골짜기를 타고 모입니다. 그리고 태백산맥 북쪽은 1.5km 전후의 높은 봉우리가 많습니다. 골짜기를 타고 강원도로 모인 바람이 강원 영동 중북부 산맥을 넘을 때 강해질 조건이 만들어지는 이유입니다.
● 바람이 아니어도…
하지만 굳이 바람 탓을 하지 않더라도 늦겨울~봄철 산불은 이미 심각한 수준입니다. 산림청이 발간한 산불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에는 총 2900여 ㏊가 산불 피해를 입었는데, 이 중 2100㏊가 4월에 타버렸습니다. 1㏊가 약 3000평이니까 2021년 4월에만 630만 평이 잿더미가 된 셈입니다. 2021년에도 산불 피해 면적 총 765㏊ 중 거의 대부분인 625㏊가 2월에 발생한 산불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유는 한국을 비롯한 지구 전체가 계속해서 건조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981~2010년 사이 서울 기준 습도 평균값은 64.4%였지만 1991~2020년 사이 평균치는 61.8%로 낮아졌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강릉의 경우 같은 기간 평균습도가 61.4%에서 59.5%로 떨어져 60% 벽이 깨졌습니다.
일시적인 산불과 바람을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긴 어렵지만, 적어도 대기가 계속해서 건조해지는 현상은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기온이 더 오르면 대기는 더 건조해지고, 산불도 그만큼 많아질 수 있습니다. 산불 예방이든, 기후변화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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