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북송’ 재판 서약서 공방…“손 덜덜 떨려” vs “보안 불가피”

  • 뉴시스
  • 입력 2023년 4월 14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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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안보·외교라인 인사들이 연루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 첫 공판준비 절차에서 검찰의 ‘서약서’를 둘러싼 공방이 빚어졌다.

검찰은 사건 특성상 보안 유지를 위해 사건기록 열람등사 전 서약서 서명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지만, 피고인 측은 강압적인 내용에 근거한 서약서를 절차로 두는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는 부당한 조치라며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부장판사 허경무·김정곤·김미경)는 14일 오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공판과 달리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없다. 이에 따라 정 전 실장을 비롯한 피고인 모두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날 기일에서는 서두부터 사건기록 열람등사 관련 피고인 측의 항변이 이어졌다. 사건기록 열람 등사는 재판 준비 과정에서 필수 절차다. 피고인 또는 법정대리인(변호사)는 첫 공판기일 전까지 검찰청에서 사건기록 열람 등사를 해야한다.

피고인 측은 검찰이 부적절한 내용의 서약서 제출을 필수 절차로 두고 있어, 이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열람등사가 제한되고 이로 인해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열람등사를 신청했지만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답을 받았다”며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재판부에서 조정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는 ‘기밀 누설 시 반국가적 행위임을 자인하고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등 검찰 서약서 일부를 직접 낭독하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재판을 맡고 있다는 게 손이 덜덜 떨린다”며 “(서약서 제출을 이유로) 열람등사를 제한하는 것은 이 자체가 직권남용이자 형사소송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서약서의 법적 근거를 물었더니 (검찰청에서) 보안업무 조항을 보내왔는데 법률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서약서를 안 내거나 유출하겠다는 것이 아닌 법률가로서 양심을 침해하는 것이라 서약을 못하겠다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정 전 실장 측 변호인도 “사건 기록 상당 부분이 군사기밀로 지정돼 열람 등사를 신청했지만 대부분 보지 못했다”며 “방어권 보장이 안됐기에 충분한 열람등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사건 기록 대부분이 기밀 등 안보 관련 사안이기에 최소한의 조치로 서약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은 “서해피격 사건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보안 서약서를 발부해 열람이 진행됐다”며 “관련 보안 규정을 보면 관계기관 장은 기밀 열람 시 보안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고 맞섰다.

이어 “관련 규정은 대통령령으로 공무원은 이를 따를 수 밖에 없고, 제한 조치를 할 수 밖에 없다”며 “검찰이 문구를 생성한 게 아닌 최소한 군사기밀에 대한 서약을 받은 것으로, 재신청 한다면 법원 판단에 따라 협조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 요청에 따라 서약서를 살핀 재판부 역시 “(서약서) 문장을 읽어보니 참 옛날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열람등사 제한 조치된 부분은 재신청 등을 통해 피고인 측은 형사소송법에 따른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해 피고인 측에 신속한 열람등사 신청을 요청하고, 다음 달 26일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기로 했다.

재판부는 “현 시점에서 열람등사가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해 기본 쟁점을 파악하고 핵심적인 제한 조치에 대해서는 법원 결정에 따라 추후 보안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 가장 빨리 재판을 진행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어민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대한민국으로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정부가 이들을 강제로 북송한 사건이다.

정 전 실장 등은 탈북어민을 북한에 송환하게 하는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구체적으로 관계 공무원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탈북어민들이 대한민국 법령과 적법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에 체류해 재판 받을 권리 등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혐의다.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에게는 강제북송 방침에 따라 중앙합동정보조사를 중단·조기 종결하도록 해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의 조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 사건은 시민단체가 정 전 실장 등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하며 시작됐다. 검찰은 2021년 11월 사건을 개시할 만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각하 판단을 내렸지만 지난해 국정원 등이 고발하며 수사가 진행됐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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