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생명 지키는 M-Tech]〈2〉 ‘AI 카메라’로 졸음운전 방지
고개 숙이거나 시선 돌려도 울려… 러 모스크바 버스에 도입해 효과
뇌파 신호 활용한 DMS도 개발 중
EU, 내년 7월 이후 신차에 의무화, 韓, 기술 있지만 법 미비… 도입 더뎌
‘전방 주시율 0%.’
14일 충남 천안 한국자동차연구원의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DMS)’ 시험장.
운전대를 잡고 2, 3초가량 눈을 감자 모니터에 이 같은 경고 메시지가 뜨더니 “삐비빅∼” 하는 경고음이 차내에 울렸다. 옆 모니터도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졸음 경보’ 문구가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카메라가 쏜 적외선이 기자의 눈 움직임을 파악해 졸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이 AI 카메라는 이미 인체 모형(더미)을 통해 인간이 졸릴 때 나오는 다양한 신체 움직임을 학습했다고 한다. 잠시 고개를 숙이거나, 옆 창문을 2초가량 응시해도 어김없이 ‘부주의 경보’ 메시지가 날아들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이 연구원의 박선홍 주행제어기술부문 실장은 “AI 카메라는 운전자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더 정교하게 졸음운전을 포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늘어나는 졸음 및 주시 태만 사고 비율
도로 위 졸음운전은 교통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22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156명 중 76%(119명)이 졸음 및 주시 태만 사고로 숨졌다. 2018년 67%였는데 9%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시속 100km로 달리던 운전자가 3초만 졸면 84m가량을 나아가게 된다”며 “졸음운전은 교통 안전의 최대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한 첨단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기자가 체험한 DMS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DMS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국가에선 이미 교통사고 감소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교통 전문 매체 ‘트래픽 테크놀로지 투데이’에 따르면 전체 시내버스의 95%에 DMS를 설치한 러시아 모스크바는 2020년 대중교통 사고가 전년 대비 약 30% 줄었다고 한다. 호주 DMS 개발업체 시잉머신은 DMS가 향후 미국 교통사고 사망자를 3분의 1로 줄일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뇌파 등 생체 신호를 활용한 DMS도 개발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세계 첫 뇌파 활용 안전운전 보조 기술인 ‘엠브레인’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이어셋 모양의 장치를 착용하면 뇌파를 감지하며 운전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다. 뇌 활동이 둔화되거나, 집중도가 저하하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설계됐다. 옵션에 따라 좌석 진동을 통해 경고하기도 한다.
시범 사업에서 엠브레인을 착용한 버스 운전사들은 부주의 운전 발생 빈도가 평균 25.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버스 운전사 김연학 씨(54)는 “점심 식사 후 오후 1, 2시경 고속도로를 지날 때 가장 졸린데 엠브레인에서 경고음이 울리니 더 안전하게 운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법 규정 미비로 국내 도입 더뎌
전문가들은 졸음운전 방지 관련 국내 기술력은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국내 도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GV70, GV80에 ‘전방주시경고(FAW)’ 등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옵션에 적용한 정도다.
보급이 더딘 이유는 법 규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 관련 규정이 있긴 하지만 현재는 자율주행(레벨3) 차에만 적용된다. 일반 승용차의 경우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관련 규정이 전혀 없다. 그렇다 보니 완성차 업체도 차 가격 경쟁력 등을 이유로 전면 도입을 꺼리고 옵션에만 적용하는 것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자동차 일반 안전에 관한 법령’을 통해 운전자 졸음 운전 경고 시스템을 2024년 7월 이후 출고되는 신차에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술 진화 속도라면 조만간 전 세계 자동차에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도입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엠브레인 등 한국이 우위를 점한 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선제적으로 규정을 만들고 기술 개발 및 보급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형구 자동차안전연구원 국제기준팀장은 “EU가 제안하면 자동차 국제 기준 논의 기구인 ‘UN WP29’가 관련 논의를 곧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 기준에 정부와 산업계의 입장을 반영시키려면 정부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술 도입이 본격화되기 전에 개인정보 보호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영상이 녹화되지 않는 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얼굴을 카메라에 노출하는 걸 꺼리는 사람도 있다”며 “기술 고도화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졸음쉼터 241곳… 설치후 졸음운전 사망 42% 감소
2011년 고속도로 도입 이후 확대 이용자 99% “졸음 예방에 효과”
10년차 화물차 운전사 오세권 씨(41)는 최근 부산에서 공연장비를 싣고 상주∼영천 고속도로를 달리다 자칫 사고를 낼 뻔했다. 장시간 운전을 하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긴 것. 차선을 이탈하면서 평소와 다른 타이어 소리에 놀라 운전대를 바로잡으며 간신히 사고를 피했다.
피곤해 졸음쉼터를 찾았는데, 화물차 자리가 없어 다시 달리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오 씨는 “2, 3시간에 한 번씩 졸음쉼터에서 20, 30분 정도 자는 습관이 있는데 앞으로는 더 철저히 지키기로 했다. 잠깐 쉬는 게 졸음운전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국도로공사 직원 아이디어로 2011년 도입된 졸음쉼터는 현재 전국 고속도로에 241곳까지 늘었다. 그 덕분에 고속도로 내 휴게시설 간 평균 거리는 2010년 22.1km에서 현재 14.5km로 34% 줄었다. 독일(10∼12km) 프랑스(8∼50km)의 도로 휴게시설 간 거리와 비슷한 수준이고, 미국(16∼48km)보다 짧다.
졸음쉼터가 사고 예방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육동형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한 ‘고속도로 졸음쉼터의 전략적 설치 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졸음쉼터 개설은 약 11.9%의 사고 감소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의 ‘일반국도 졸음쉼터 설치 및 개선 기본계획 수립 연구’에 따르면 졸음쉼터 이용자의 99.1%가 “쉼터가 졸음운전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쉼터가 생기기 전인 2010년에는 연간 졸음운전 사망자가 119명이었지만, 이후 10년 평균(2011∼2022년) 69명으로 42% 줄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사망자 수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 졸음운전이 적지 않은 만큼 쉼터 이용을 더 독려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했다.
졸음쉼터는 출범 13년째를 맞아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며 진화하고 있다. 규정상 주차면 10면 이하인 소형 졸음쉼터에는 화장실, 여성화장실 비상벨, 방범용 폐쇄회로(CC)TV, 조명시설 등을 갖춰야 한다. 중형(주차면 11∼29면)과 대형(주차면 30면 이상) 시설에는 벤치, 운동시설, 자판기 등이 설치된 곳도 있다. 다만 오 씨 사례처럼 일부 쉼터에 화물차 주차공간이 없거나 부족하다 보니 화물차 운전사들이 이용하기 불편하단 지적도 나온다. 이에 국토부는 지난달 27일 화물차 주차공간을 의무 설치하는 내용의 ‘졸음쉼터의 설치 및 관리지침 전부개정안’을 행정예고한 상태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운전자 스스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피곤하면 졸음쉼터를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특별취재팀 유근형 사회부 차장 noel@donga.com 한재희 기자 hee@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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