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린이집이 문을 닫았어요. 거기서 쓰던 걸 싸게 내놨네요.” 17일 서울 중랑구의 한 노인복지관 1층. 복지관 관계자는 영유아 옷과 장난감 할인 판매하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 있던 국공립어린이집은 원생 부족으로 올 1월 문을 닫았다. 중랑구 관계자는 “폐원한 어린이집은 노인복지관 사무실 또는 초등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로 이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최저치인 0.78명을 기록한 가운데 서울 어린이집 10곳 중 1곳가량이 지난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생 부족이 현실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어린이집 폐원 물결은 지방에서 서울로, 사립에서 국공립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 어린이집 폐원한 자리엔 노인복지시설 들어서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 어린이집은 4712곳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폐업한 어린이집은 421곳으로 10%에 육박했다. 새로 문을 연 어린이집을 감안하더라도 매년 300곳 이상이 줄면서 2018년 6008곳에 이르던 서울 어린이집은 4년 만에 21%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있는 국공립어린이집이 폐원한 곳도 지난해 25곳에 달했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사회복지관 내 국공립어린이집도 올 1월 폐업했다. 30년 가까이 운영된 곳이었지만 원생이 계속 줄자 운영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이날 어린이집 게시판에는 “원생들이 다른 기관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반면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같은 복지관에 위치한 치매노인 돌봄시설은 매번 정원을 채우고 있다. 노원구 관계자는 “폐업한 어린이집은 올 8월부터 어르신 또는 장애인 복지프로그램 진행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린이집이 문을 닫은 자리에 요양병원이나 복지관 등 노인시설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자 전문 전문 컨설팅 업체까지 등장했다. 요양병원 등 노인시설 건축 및 리모델링 업체 대표 이상권 씨는 “어린이집을 폐원하고 다른 시설로 활용하려는 원장들의 문의가 주 1, 2건씩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인근 어린이집 폐원에 부모들 울상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 부모들은 아이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서울 노원구의 한 유치원에서 만난 학부모 박모 씨(35)는 “첫째가 다니던 유치원 옆에 있는 어린이집에 둘째를 보내려 했는데 얼마 전 폐원하는 바람에 일단 집에서 돌보고 있다”며 “보낼만한 어린이집을 찾고 있는데 다들 거리가 있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 중 ”이라고 했다. 서울 중랑구 용마산역 인근에서 연계 운영되던 어린이집과 유치원 중에서도 어린이집만 지난해 문을 닫았다. 인근에 거주하며 11개월 아이를 키우는 박정민 씨(31)는 “해당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사가정역 쪽에 있는 더 먼 곳으로 아이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지방에서 서울, 사립에서 국공립까지 무차별적으로 폐업이 확산되고 있다”며 “집 근처 어린이집이 사라지면 보육 부담 때문에 아이를 갖기 전 한 번 씩 더 생각할 수밖에 없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아이들이 집과 가까운 곳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공립어린이집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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