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저출산 등 여파 헌혈 줄어
수요 절반 이상 美-獨 등서 수입
고령화 감안땐 ‘확보 경쟁’ 가능성
“보상-캠페인 늘려 혈액대란 막아야”
의약품 제조에 쓰이는 ‘원료 혈장(血漿)’의 국내 자급률이 최근 6년 새 81.4%에서 45.6%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혈장은 사람의 피에서 적혈구, 백혈구 등을 제외한 액체 성분을 뜻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과 저출산·고령화로 헌혈이 줄어들자 의료기관들은 우선 급한 ‘수혈용 혈액(전혈·全血)’ 확보에 치중했다. 그 탓에 혈장 자급률이 떨어졌다. 현재는 부족한 혈장을 해외에서 수입해 쓰고 있지만 장기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보건 안보’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성분 헌혈 감소… 수입 의존
헌혈은 크게 ‘전혈 헌혈’과 ‘성분 헌혈’로 나뉜다. 전혈은 혈액의 모든 성분을 한 번에 320∼400mL 채혈하는 것으로, 보통 헌혈의집 등에서 피를 뽑는 헌혈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렇게 모아진 혈액은 대부분 수술에 쓰이는데 보관 기간이 35일로 짧아 수입이 불가능하다.
반면 성분 헌혈은, 우선 피를 뽑은 뒤 혈장이나 혈소판 같은 성분만 걸러서 모으고 나머지는 다시 헌혈자의 몸에 넣어주는 것이다. 헌혈차에 가끔 노란 액체가 담긴 혈액 봉투가 보이는데 바로 그것이다. 피의 붉은색을 구성하는 적혈구가 빠져 있기 때문에 붉은색이 아니라 노란색을 띤다. 의약품 제조에 쓰는 혈장은 약 1년간 냉동 보관할 수 있고, 수입도 가능하다.
혈장 중에서 의약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는 것을 원료혈장이라고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원료혈장 사용량은 2016년 69만7793L에서 2022년 103만8925L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자급률은 81.4%에서 45.6%로 줄었고 부족한 양은 수입에 의존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군부대와 고교 등 단체 헌혈이 위축되면서 혈액 수급이 나빠지자 일선 헌혈의집과 헌혈카페에서 헌혈자들에게 성분 헌혈 대신 전혈을 많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헌혈카페 20곳을 운영하는 한마음혈액원의 황유성 원장은 “시급한 수혈용 혈액을 먼저 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원료혈장 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 고령화로 의약품용 수요 증가… 대책 필요
우리나라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원료혈장을 필요로 하는 의약품 수요도 점점 늘고 있다. 코로나19는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인구 감소는 장기적으로 혈장 확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장기적으로 헌혈인구 감소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예로 과다출혈이나 간경변, 면역질환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인 알부민과 면역글로불린 제제 등은 원료혈장으로만 만들 수 있다. 임영애 국가혈액관리위원장(아주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한국 등 대부분 국가가 원료혈장을 미국, 독일 등에서 수입한다.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머잖아 국가 간 ‘원료혈장 확보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헌혈이 가능한 국내 인구(만 16∼69세)는 올해 3916만 명에서 2043년 3066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미 병원들은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수혈자를 직접 구해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혈액 대란을 막으려면 헌혈자에 대한 보상을 높이고, 헌혈 캠페인을 확대해 헌혈 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엄태현 대한수혈학회 이사장(인제대 일산백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헌혈가능 인구 가운데 꾸준히 헌혈하는 건 5% 정도뿐”이라며 “헌혈 인구가 지금 2배 수준으로 늘어나야 혈액 부족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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