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장애인의 날
국립공원서 포획해온 시료 분류
강원도내 3개 시설서 14명 근무
“난 곤충 연구가… 멋지다고 생각”
“저는 멋쟁이딱정벌레를 좋아합니다. 이름처럼 멋지고 커서 표본 만들기도 좋습니다.”
‘장애인의 날’(매년 4월 20일)을 이틀 앞둔 18일 강원 춘천시 늘해랑보호작업장. 이이 씨(29)가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말투로 말했다. 중증 발달장애인 이 씨는 전국 국립공원에서 포획해 온 곤충 시료를 종별로 나누는 ‘곤충선별사’다. 2020년부터 벌써 4년째 매일 4시간씩 ‘정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내가 곤충 연구가라서 멋지다고 생각합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 매주 곤충 1만 마리씩 분류
이 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곤충선별사는 모두 5명. 중증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를 가진 발달장애인들이다. 강원 내 또 다른 2개 시설에서도 8명이 일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공원 내 여러 지점에 포획장치를 두고 곤충을 채집한다. 이 곤충들을 1차적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과거에는 공단 연구원들이 해오다 2019년 ‘집중력이 좋은 발달장애인을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국장애인개발원 등의 도움을 받아 6명으로 시작했고 현재는 14명까지 늘어났다. 올해 2명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
중증 발달장애인이 곤충 선별 업무를 배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국립공원연구원 한태만 책임연구원(박사)은 “갑자기 일을 멈추거나 감정 기복으로 화를 낼 때도 있어 수시로 달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인들의 집중력이 좋아지고 곤충 선별 능력도 일취월장했다. 이제 한 작업장에서 서너 명이 일주일에 1만 마리가 넘는 곤충을 분류한다. 2020년에는 이들이 미기록종 ‘청동방아벌레’를 찾아내기도 했다. 한 박사는 “원주 작업장 선별사가 방아벌레류로 잘 분류해준 덕에 새로운 종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늦깎이 꿈이 생긴 장애인도 있다. 선별사 신미현 씨(51)는 “서점에서 책을 샀다. 곤충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씨가 늘 갖고 다니는 공책에는 벌과 나비의 그림이 가득했다. 어머니 박영자 씨는 “딸이 어딜 가든 곤충을 찾는다. (드라마 속 발달장애인 주인공) 우영우에게 고래가 있었다면 미현이에게는 나비와 벌이 그런 존재”라고 했다.
● 장애인 일자리 늘려 고용 복지 동시 해결
곤충선별사 일자리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발달장애인이 도전하기 힘든 과학 분야 전문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발달장애인들이 도전할 수 있는 전문 일자리가 드물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신체장애인을 포함해 전체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취업한 업종은 제조업 14.2%,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13.7%, 농업·임업·어업·광업 13.0% 순(지난해 5월 기준)으로 대부분 단순 노무직이거나 장애 관련 직종이다.
장애인 일자리 자체도 많지 않다. 법에 따라 국가·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전체 근로자 중 3.6%, 민간기업은 3.1%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공공기관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아 낸 부담금만 최근 5년간 2610억 원에 달했다.
국내 발달장애인은 2017년 22만5601명에서 2021년 25만5207명으로 13% 늘었다. 이 중 경제 활동이 가능한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80%에 이른다.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나운환 교수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직업은 생계수단을 넘어 정서 안정, 사고력 증진을 돕는 치료 수단”이라며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면 고용과 복지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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