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A 씨는 지난해 학교폭력(학폭) 책임교사를 맡은 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자정까지 이어지는 가해 학생 학부모의 협박 전화와 폭언에 시달린 뒤 극심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생겼다. 그는 “다른 선생님들이 모두 맡기 꺼려서 막내 교사인 내게 업무가 배당됐다. 사람 만나기가 꺼려지니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버겁다”고 말했다.
최근 일선 초중고교 학폭 책임교사는 교사들 사이에서 기피 보직이다. 사건 조사부터 교육지원청 보고까지 ‘가욋일’이 생기는 데다 가해 학생 측 불복 소송으로 송사에 휘말릴 수도 있다. 다들 기피하는 업무를 저연차 및 기간제 교사들이 떠맡는 경우도 많다.
20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학폭 책임교사 현황’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전국 중고교 학폭 책임교사 6152명 중 기간제 교원 비율은 26.5%(1628명), 5년 차 미만 저연차 교사 비율은 21.9%였다. 그중 355명은 부임 첫해 학폭 업무를 맡은 새내기 교사였다.
경기의 한 고교 교사는 “학원가에서 발생한 학폭 때문에 폐쇄회로(CC)TV부터, 학생 휴대전화 기록까지 확보해야 했다. 수사권도 없는 교사한테 경찰 역할까지 요구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한 달 8만 원가량 (학폭 담당) 수당을 더 받겠다고 학폭 업무에 지원할 교사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폭 사건 초기부터 관할 교육청 등 외부 기관이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피해학생 치료와 지원 등을 하는 전문 지원기관의 역할을 확대해 교사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학교 현장에서 학폭 업무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어떤 학폭 근절 대책도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며 “학폭 책임교사제를 보완할 방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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