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250만명, 月 1만원씩 걷어 저임금 노동자 위한 기금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노동계에 쓴소리
정부 상생임금위 참여했다 뭇매
노조가 고임금-정규직 대변한 사이 하청-비정규직 인건비 쥐어짜게 돼
양대노총, 양극화 해소 기금 만들면 정부도 기업도 따라올 수 밖에 없어

20일 서울 동대문구 일명 ‘창신동 봉제거리’의 한 봉제공장에서 만난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당시 
이곳은 사장과 근로자가 모두 비슷한 처지로 가릴 것 없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 거대 노총이 이들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우를 30년 가까이 외면해 왔다”고 비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일 서울 동대문구 일명 ‘창신동 봉제거리’의 한 봉제공장에서 만난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은 “코로나19 확산 사태 당시 이곳은 사장과 근로자가 모두 비슷한 처지로 가릴 것 없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 거대 노총이 이들 같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우를 30년 가까이 외면해 왔다”고 비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에서 40년 가까이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사진)은 20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노동계가 30년 넘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양극화 문제를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까지 노동계는 정부와 기업에만 그 책임을 미뤄 왔다”며 “노동계와 양대 노총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했다. 》

“양대 노총 조합원이 약 250만 명이다. 이들이 월 1만 원씩이라도 모아서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20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봉제공장. ‘드르륵’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는 가운데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59)은 “이곳 사람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1시, 12시에 퇴근하고도 연 수입이 3000만 원을 넘지 못한다. 주 69시간 근무, 최저임금 같은 소리는 이들에게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노총은 ‘양극화를 재벌이, 정부가 책임져야지 왜 우리가 책임지느냐’고 한다”며 “아니다. 노동계가 먼저 나서야 정부도 기업도 따라온다”고 말했다.

1983년부터 노동운동에 투신해온 그는 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금속산업연맹 조직실장까지 지냈다. 현 정부에서 임금 개편을 논의하는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했다가 민노총에서 사무총장 사퇴 요구 등 ‘뭇매’를 맞았다. 그는 본보 인터뷰에서 “양극화와 임금 격차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이라도 팔 것”이라며 “노동계부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조가 고임금-정규직 대변, 양극화 심화”
한 사무총장은 “나는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 결과 상층 노동자만 처우가 좋아지고 밑바닥(저임금 근로자)은 방치됐다”며 “나의 운동은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이어 “방송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심하면 7, 8배 난다”며 “정규직 연봉은 1억 원이 넘는 사이 5년 차 이하 비정규직 작가들은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도 연봉 2000만∼3000만 원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세 식당이나 시흥 반월 동두천 등 지방의 농공단지, 5인 미만 사업장 같은 곳들은 “제대로 월급을 줄 능력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사장과 근로자가 모두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곳들이다. 반면 “‘판교 밸리’로 대변되는 정보기술(IT)업계와 삼성전자, LG, SK 같은 대기업에서는 최상위 고임금 근로자를 중심으로 임금 인상 경쟁이 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58.5%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상위 10% 부자는 전체 자산의 43%를 보유 중이다.
한 사무총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즈음부터 고용이 불안정해지자 대기업 노조는 ‘내 임금부터 지키자’고 나섰다”며 “기업들은 노조를 적으로 돌리지 않으려 고임금 정책을 폈고,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이어 “그 임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청·비정규직 인건비를 쥐어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양대 노총의 ‘임금 지키기 투쟁’을 비판했다. 한 사무총장은 “노조가 너도나도 임금 인상 투쟁을 하다 보니 오랜 관성이 생겼다”며 “‘기승전 임금 극대화’가 사회적 현상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 “적당히 불평등해지자… 노동계 이제 변해야”
한 사무총장은 “나는 마르크스나 소비에트식 평등주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절한 수준의 불평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하후상박’을 언급했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두텁게 올려주고 고임금은 천천히 올려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고임금, 대기업, 전문가, 정규직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이에 대해 그는 노동계가 먼저 변하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양대 노총이 먼저 나서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기금을 만들면 재벌 총수들이 내는 것보다 더 큰 기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 조합원 250만 명이 매달 1만 원씩 기금을 모으면 단순 계산해도 연 3000억 원이다. 4년간 기금이 쌓이면 1조2000억 원이다. 그는 “이건 기업 사내유보금 다 털어도 안 되고, 재벌 총수 주식 다 털어도 안 되는 문제”라며 노동계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만들어지면 기업과 정부도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동계를 따라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계는 한국의 경영자와 재벌 체제를 인정해주고, 기업은 노조의 자유로운 권리와 교섭권을 인정해주는 식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등과 함께 ‘성찰과 모색’ 첫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들과 손잡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인지 묻자 “나에게 두 가지 원칙이 있다”며 “하나는 ‘관(官·정부)밥’ 먹지 않는다. 또 하나는 선거에 나가지 않는다”라고 일축했다.

#한석호#전태일재단#양대노총#노조#상생임금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