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5% 이상 인상 못하는데
직전보다 32% 인상 등 규정 위반
“계약 무효 최우선변제 받을수도”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 씨(61) 일당이 보유한 등록임대주택 10채 중 4채가량이 임대료 인상 폭을 어긴 불법 전세계약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 안팎에선 현행법을 위반한 계약이 무효화될 경우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인 피해자가 일부 피해액을 구제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동아일보가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대책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남 씨 일당이 소유한 등록임대주택 중 대책위에서 보증금을 확인한 주택 253채 중 103채(40.7%)가 직전 전세계약 대비 임대료 인상 폭이 5%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사업자가 등록임대주택으로 신고할 경우 지방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받는 대신 보증금을 직전 계약보다 5%를 초과해 올릴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30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계약 내용을 시정하지 않으면 임대주택 등록이 말소된다.
남 씨 일당이 법을 어기며 보증금을 올린 주택 중에는 17일 극단적 선택을 한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출신 피해자 박모 씨(31)의 아파트도 있었다. 박 씨는 2021년 기존 보증금 7200만 원에서 25% 오른 9000만 원으로 재계약했는데 이 때문에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최소변제금 기준(8000만 원)을 넘어 보증금을 한 푼도 못 받고 거리로 나앉을 처지가 됐다.
14일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 임모 씨도 2021년 보증금 6800만 원에서 32% 오른 9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건축왕 일당이 보유한 등록임대주택이 최소 834채 확인된 만큼 보증금이 확인되지 않은 주택까지 포함할 경우 불법 계약은 최소 수백 채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남 씨 일당이 불법 계약을 일삼을 수 있었던 건 등록임대주택 등기 규정이 지난해 12월 전면 시행된 탓에 피해자 대다수가 자신이 세입자 보호 의무가 부여된 등록임대주택에 산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관리감독 주체인 관할 지방자치단체도 불법 계약을 걸러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증액 가능 범위를 초과한 임대차 계약은 무효라고 지적한다. 엄정숙 법무법인 법도 변호사는 “보증금 중 인상률 5%를 넘는 부분은 부당이득”이라며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증액분의 무효를 다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소송을 통해 계약이 무효화될 경우 17일 숨진 박 씨처럼 최우선변제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자들은 보증금 중 일부를 최우선변제금으로 받아낼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건축왕 피해자 10명 중 3명은 보증금이 최우선변제금 기준을 넘어 경매에 넘어갈 경우 한 푼도 못 건질 수 있는 처지다. 다만 경매에서 살던 집이 낙찰되기 전 해당 계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소송으로 입증해야 한다. 하종원 법률사무소 글 변호사는 “절차도 번거롭고, 법률 지식도 필요해 피해자들이 직접 소송을 하는 건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들을 도와 법적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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