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초 ‘살이 저절로 빠지는 약’이라며 시중에 마약 성분이 들어간 불법 의약품 약 14억 원어치를 팔다 적발된 ‘부부 마약사범’이 검거 직전 해외로 도피했다. 경찰은 이들 부부가 필리핀으로 도주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인터폴 적색 수배를 요청했다. 이들은 수사망이 좁혀오자 다시 중국으로 밀입국했지만 지난해 6월 결국 덜미가 잡혔다. 무려 17년 만에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국내로 송환된 부부는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 해외 도피 마약사범 갈수록 늘어
최근 마약범죄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검거 및 처벌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는 마약사범 역시 늘고 있다.
24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한국인 마약 사범 도피 현황’에 따르면 18일 기준으로 해외로 도피한 한국인 마약사범 미검거자는 218명에 달한다. 이들 중 인터폴에 적색 수배된 마약사범이 138명(63.8%)이다.
경찰은 2년 이상 징역 등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 체포·구속영장이 발부된 경우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한다. 해외로 도망친 마약사범 10명 중 6명이 중죄를 지었다는 뜻이다. 경찰은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마약 성분이 담긴 음료를 마시게 하고 학부모들을 협박한 이른바 ‘필로폰 음료’ 사건을 기획한 이모 씨(25) 등에 대해서도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한 상태다.
마약사범이 도피한 나라는 중국(42명), 미국(40명), 태국(34명), 필리핀(30명) 순이었다. 또 인터폴 적색 수배된 해외 도피 마약사범 138명 중 32.6%(45명)가 5년 이상 장기 도피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사범 규모가 늘어난 만큼 해외 도피 마약사범 수도 늘고 도피 기간도 장기화되는 추세”라고 했다.
● 해외 도피 중 국내 마약 공급까지
문제는 해외 도피 마약사범들이 해외에서 국내로 마약을 공급하는 ‘공급책’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동남아 3대 한국인 마약왕’ 중 한 명으로 불렸던 김모 씨(47)는 동남아 도피 중이던 2018년부터 텔레그램을 이용해 국내 공급책과 구매자들에게 필로폰과 합성 대마 등을 판매했다. 김 씨로부터 마약을 공급받아 국내에 판매한 공범은 약 20명, 판매 금액은 약 70억 원에 달한다. 경찰은 3년여간 베트남 공안부와 공조수사를 벌여 지난해 7월 김 씨를 베트남에서 붙잡았다. 국내에서 필로폰 49.5g(약 5000회 투약분)을 유통하다가 2021년 초 필리핀으로 도주한 A 씨(41) 역시 현지에서 텔레그램 등을 통해 국내 마약 유통에 관여하다 지난해 3월 붙잡혔다.
경찰은 이 같은 사례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외 도피 마약사범을 붙잡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발생한 ‘필로폰 음료’ 피의자 3명은 중국 현지법 위반 혐의도 있어 검거될 확률이 높다. 다만 국내 송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마약사범 도피를 막고, 도피한 경우 신속하게 검거 송환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필로폰 음료 피의자들의 경우 윤희근 경찰청장이 “검거에 협조해 달라”는 친서를 20일 중국 공안부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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