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청년 41%, 복지지원 못받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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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추산 ‘영 케어러’ 첫 실태조사

김모 씨(33·서울 성동구)는 18세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친언니를 홀로 돌보고 있다. 언니는 김 씨가 자리를 비우면 머리를 자르거나 자해를 하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다. 부모의 부재 속에 지난 15년 동안 생계도 오로지 김씨의 몫이었고, 학업도 병행해야 했다. 하루 2시간만 자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공장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언니를 돌봤어도 휴대전화 요금 낼 돈조차 없이 궁핍했다.

김 씨는 “휴학이 잦아 8년 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했지만, 언니를 돌보느라 스펙이나 경험 쌓을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며 “취업 면접 때 ‘졸업이 왜 이렇게 늦었냐’ ‘이 시간 동안 스펙 안 쌓고 뭐 했느냐’는 물음을 들을 때는 너무나 비참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김 씨처럼 중증질환, 장애, 정신질환 등이 있는 가족을 돌보고 있거나, 그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돌봄청년(13∼34세)의 실태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체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첫 조사다. 가족돌봄청년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최대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주당 평균 돌봄시간은 21.6시간이었다. 가사노동, 병원 동행, 용변 보조 등이 포함된 활동이다. 이들은 “주당 평균 14.3시간이면 돌봄을 감당할 수 있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7.3시간이 긴 21.6시간을 가족 돌봄에 쏟고 있었다. 평균 돌봄 기간은 약 4년(46.1개월)에 달했다.

돌봄 부담이 과중하다 보니 가족돌봄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5%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 청년(8.5%)에 비해 7배가 넘는다.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22.2%)도 일반 청년(10%)의 2배가 넘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36.7%가 가족돌봄 부담으로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 미래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돌봄 대상은 할머니(39.1%)에 이어 형제자매(25.5%), 어머니(24.3%), 아버지(22%) 순이었다. 중증질환자(25.7%)가 가장 많았고 장애인(24.2%), 정신질환자(21.4%), 장기요양 인정 등급(19.4%), 치매 환자(11.7%) 순이었다.

하지만 가족돌봄청년 10명 중 4명은 돌봄 지원 등의 어떠한 복지 서비스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돌봄청년의 40.7%는 의료비나 생계비 지원 등 현금성 복지 지원을 이용해본 경험이 없었다. 47.3%는 가정방문돌봄 등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없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돌봄청년의 경우 복지 시스템이 있어도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발굴하고 복지-돌봄 서비스와 연계해야 한다”며 “자립을 도우려면 구직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가족돌봄청년#복지지원#영 케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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