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액체이면서 고체인 ‘슬라임’… 터미네이터 속 ‘액체 로봇’도 나올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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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상태에 가까운 ‘비뉴턴 유체’
빠른 힘 가하면 단단하게 뭉쳐져… 특성 활용해 과속방지턱 만들기도
수은-갈륨 등 녹는점 낮은 액체 금속
모양 바꿀 수 있는 전자회로에 활용

말캉말캉 몰랑몰랑! 이 장난감의 이름은 슬라임(Slime)이에요. 만지다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가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지죠. 액체 같기도, 고체 같기도 한 슬라임의 원리와 다양한 활용을 소개합니다.

● 고체-액체 성질 모두 가진 슬라임
자석을 가까이 대자 자성을 가진 슬라임이 자석을 향해 뻗어 오르고 있다. 사진 출처 미국 과학 사이트 더원더오브사이언스 홈페이지
자석을 가까이 대자 자성을 가진 슬라임이 자석을 향해 뻗어 오르고 있다. 사진 출처 미국 과학 사이트 더원더오브사이언스 홈페이지
슬라임은 왜 끈적끈적하고, 물렁물렁할까요? 지난해 12월 친환경 재료로 슬라임을 만드는 기업 ‘케피’를 방문했습니다. 액체처럼 흐르지만 고체처럼 손에 잘 잡히는 장난감을 ‘슬라임’이나 ‘액체 괴물’이라고 불러요. 1976년 미국 장난감 기업 마텔이 ‘구아검’이라는 식품첨가물에 붕산나트륨(붕사)과 물 등을 섞어 슬라임을 처음 만들고 판매했어요.

나원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구조융복합소재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슬라임을 “묵 같은 상태”라고 표현했어요. 물풀에 들어 있는 성분인 폴리비닐알코올(PVA)이나 구아검이 붕사와 반응하면 PVA 분자들이 연결되어 고분자 화합물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 화합물은 그물처럼 긴 사슬로 연결되어 있어요. 사슬 속의 빈 공간으로 물이 들어가면 사슬이 물을 가둬 준답니다. 손으로 잡아당기면 쉽게 밀리면서 형태가 변하지만 액체처럼 흐르지는 않지요.

친환경 목욕용 슬라임 개발 기업 케피의 강성호 연구소장은 “PVA가 수분을 잘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보통 슬라임을 갖고 놀다 보면 피부 장벽을 이루는 수분을 앗아간다”며 “사람들의 피부에 오히려 보습 효과가 있는 슬라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케피의 슬라임은 미역과 다시마 등의 해조류에서 나오는 점액과 샴푸에 들어가는 화장품 성분을 섞어 만든 목욕 제품입니다.

● 슬라임으로 만든 과속방지턱
연구팀이 전분으로 만든 과속방지턱 위를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 봤더니 덜컹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KIST 제공
연구팀이 전분으로 만든 과속방지턱 위를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 봤더니 덜컹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KIST 제공
KIST는 슬라임을 이용한 ‘과속방지턱’도 만들었어요. 직접 기자가 본 슬라임 과속방지턱은 감자 전분과 물을 섞은 슬라임 주머니였어요. 만져보자 주머니 속의 슬라임은 고체보다는 걸쭉한 액체에 가까웠어요. 주머니를 손으로 천천히 눌렀더니 예상대로 손가락이 주머니 속으로 쑤욱 들어갔어요. 이어 빠르게 주머니를 쥐었더니 묵직한 알갱이가 만져졌지요. 분명 같은 주머니를 만졌는데 말이에요.

이는 ‘비뉴턴 유체’의 특성 때문입니다. 액체에 전분처럼 물에 녹지 않는 미세한 고체 입자를 많이 넣었을 때 만들어지는 물질을 비뉴턴 유체라고 해요. 액체에 가깝지만 고체 입자가 녹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액체와는 다릅니다. 비뉴턴 유체를 천천히 밀면 물질 속에 액체와 고체 입자가 힘에 천천히 밀리며 물처럼 흘러가요. 반면 빠르게 힘을 가하면 혼합물의 고체는 밀려나지 않고 끈끈하게 뭉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연구팀은 비뉴턴 유체의 특성을 이용해 과속방지턱을 만들었어요. 기존의 과속방지턱은 자동차가 천천히 지나갈 때도 충격이 많이 발생해서 탑승자에게 불편함을 주고 소음이 발생합니다. 슬라임으로 만든 과속방지턱은 자동차가 느린 속도로 지나가면 액체처럼 부드럽게 퍼져 평평해져요. 반대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이 위를 지나가면 과속방지턱이 고체처럼 뭉쳐 속도를 늦추는 장애물이 되지요.

● 간병 로봇 등에도 활용 가능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T-1000은 액체 금속으로 이루어진 로봇입니다. 영화 속에서 마음대로 겉모습을 바꾸며 주인공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히지요. T-1000을 이루는 액체 금속이 겉모습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은 녹는점에 있어요. 수은이나 갈륨 등의 액체 금속은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한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폴더블폰(접을 수 있는 휴대전화)이나 모양을 변형할 수 있는 안테나 등 전기가 통하면서도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전자회로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액체 금속은 상온에서 액체지만, 바깥층에 산화막이 있어 물방울처럼 응집해 있습니다. 이렇게 물방울로 모여 있으면 흩어지는 것이 쉽지 않아 다른 물질에 코팅시키는 것이 어렵지요.

지난해 8월 서울과학기술대 구형준 교수팀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소주희 연구원이 액체 금속이 스스로 퍼지며 코팅 막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해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구리 기판에 액체 금속의 한 종류인 갈륨 방울을 올려놓고 염산 증기에 노출시켰어요. 그러자 갈륨 겉에 있던 산화 막이 염산 증기에 반응하며 녹아내렸지요. 그 결과 액체 금속이 구리 기판을 적시며 얇게 코팅시켰어요. 갈륨(액체 금속)이 구리 기판에 잘 흡수되는 이유는 갈륨과 구리가 친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구리 기판의 표면에 미세한 기둥들을 세웠어요. 갈륨이 젖어들 때 이 기둥 사이로 흘러갑니다. 이때 기둥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아 모세관 현상이 일어나지요. 모세관 현상은 가느다란 관을 따라 액체의 분자들이 끌려가며 이동하는 현상이지요. 미세 기둥을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면 원하는 곳에만 갈륨을 코팅할 수 있답니다. 소 연구원은 “앞으로 사람과 접촉하는 간병 로봇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슬라임#비뉴턴 유체#액체 로봇#k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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