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국물에 뽀얀 떡을 살짝 적셔 호호 불어서 먹는 떡볶이 맛. 학교가 끝나면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갔던 옛날 분식집 냄새. 직원 형, 오빠들이 주던 김밥 서비스까지. 과거를 예쁘게 추억하게 하는 곳이 있다. 바로 ‘오빠네 옛날 떡볶이’. 줄여서 ‘오옛떡’이다.
오옛떡은 30년 간 특유의 맛을 유지해오는 동시에 주위 곳곳마다 뜨듯한 온정을 나눠오고 있다. 독거노인, 요양원 지원부터 특수학교에 지역사회 나눔까지. 지금까지 해온 기부만 7억 원이 훌쩍 넘어간다. 이런 나눔은 “나와의 약속”이라며 “하루를 느슨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오옛떡의 백동민 대표(53)다. 그를 직접 만나 갓 끓인 떡볶이 국물처럼 따듯한, 30년 간의 나눔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호프집을 하던 부모님을 도와 모은 돈으로 군고구마 노점을 운영하던 백 대표는 맨땅의 헤딩하듯 1994년 서울 신촌의 대학가 앞에 작은 떡볶이 노점을 차렸다. 백 대표는 “고구마를 팔던 거리에 어묵 노점, 순대 노점도 있었다”며 “마침 떡볶이만 없었던 터라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다”고 했다. 백 대표는 주변 노점의 텃세 등 열악한 환경에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매일 재료 하나 하나를 직접 공수하며 지금의 오옛떡을 만들어냈다.
가게 이름 ‘오빠네 옛날 떡볶이’는 노점 시절부터 ‘오빠네 떡볶이 가자’, ‘오빠~ 여기 떡볶이 1인분이요’, ‘오빠네 그곳은 옛날 추억의 맛이 난다’고 말하던 손님들의 입에서 탄생했다. 떡볶이, 각종 튀김과 작은 크기의 꼬마김밥 요리법은 모두 백 대표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속에는 모두 백 대표가 인생에서 맛본 음식의 추억이 담겨있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던 동네 친구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 먹곤 했던 길거리 떡볶이의 맛, 학교 앞에서 50원 어치 떡볶이를 사서 어묵 국물 한 숟갈 넣어 한 입에 호로록 먹었던 그 맛도 담겼다. 오옛떡 메뉴의 또다른 주인공인 꼬마 김밥도 경험에서 탄생했다. 백 대표는 “당시에는 김밥 가게가 따로 없었다. 할머니들이 당구장에 김밥, 야끼만두 등 간식거리가 가득 든 큰 쟁반을 머리에 이고 오셔서 파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30년의 세월 동안 새로운 메뉴 개발도 해봤다. 하지만 백 대표는 손님들이 언제든 생각날 때마다 그 맛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30년 간 특유의 맛과 메뉴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백 대표가 지킨 약속은 맛 뿐이 아니다. 닿은 곳 마다 기부와 봉사로 계속 인연을 이어왔다.
오옛떡에 가면 반드시 있는 것이 있다. 달큼한 떡볶이와 고소한 순대 뿐이 아니다. 계산대 근처에는 모금함이 놓여있다. 벽 한 켠에는 기부 현황판이 꼭 붙어있다. ‘꽃동네 1998년~현재’, ‘홀트학교 2013년 11월~현재’, ‘일산 컨벤션고등학교~2015년 9월~현재’…누적 금액에 쓰인 액수만 봐도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만 얼추 7억 원이 넘어간다.
그의 기부는 노점 시절 꽃동네 요양원에 월 2만 원씩을 꼭 기부하던 것부터 시작됐다. 백 대표는 “미용사였던 어머니가 항상 입버릇처럼 ‘나이 들면 꽃동네 가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며 “나이가 드신 후에 봉사가 어려우시니 나라도 대신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도 물론 꽃동네에 대한 기부는 계속되고 있다.
노점 생활의 마침표도 기부였다. 그는 “노점 생활을 청산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은 서대문구청에 직원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갔다. 가서 ‘누구 도울만한 분은 없나’라고 물었다”며 “그때 딱 어려우신 독거노인 분이 계셨다. 월세만 내면 어려움이 해결될 것 같다고 하셔서 망설임 없이 월세를 대신 내드렸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노점 생활을 하며 내가 받은 도움만큼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신촌에 처음 가게를 차린 후 한 두개 씩 직영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사를 이어가던 중 동네 바자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참여하게 된 장소는 ‘홀트 학교’.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가 운영하는 특수교육기관으로 지체장애 아이들이 교육을 받는 특수학교였다. 그는 이곳이 장애인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말을 듣고는 망설임 없이 교장실을 찾아가 ‘도와드릴 것이 있다면 뭐든 돕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렇게 기부를 시작해, 지금까지 딱 한 달을 빼고는 기부를 꾸준히 지속해왔다.
그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그 해 한 달만 기부를 하지 못했다”며 “그래서 그 다음 해에는 더 미친듯이 열심히 살았다. 한 달도 기부를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2013년 홀트학교 장학금 사업으로 맺어진 인연은 홀트요양원, 홀트복지타운까지 넓어졌다.
백 대표는 200명 남짓한 학생들이 좀 더 실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봉사를 실천하기도 했다. 매달 마지막주 가는 급식 봉사에서 ‘꼬마김밥’을 추가했다. 메뉴만 추가한 게 아니다.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일일 오옛떡 요리사가 됐다. 그는 “떡튀순(떡볶이, 튀김, 순대)랑 어묵 말고 다른 메뉴도 주고 싶었다”며 “그래서 홀트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김밥을 만들어 급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4년 전 부터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체육대회도 직접 주도해 개최했다. 1등 경품으로 ‘에버랜드 이용권’도 제공했다. “당시 아이들이 단순히 기부금을 받고 음식을 먹는 것 말고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다”며 “딱 에버랜드가 떠오르더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신나게 에버랜드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홀트학교 아이들이 가장 멀리 다녀온 외출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고등학교 장학금 사업도 시작했다. 백 대표는 “그 때 교복도 사입어야 하던 때고, 학생들 중에 어려운 아이들이 참 많았다”며 “기부라고 하면 자기가 왜 기부를 받아야 하는지 괜히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 ‘오옛떡 장학금’으로 돈을 기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홀트학교 뿐 아니라 장학금 수혜를 받은 고등학생도 따뜻한 답을 보내왔다. 오옛떡 장학금을 받고 핸드볼 선수로 활동하던 한 학생은 그 해 지역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내 감사한 마음을 꼭꼭 담아 자신의 팀원들 사인이 적인 핸드볼과 한 글자씩 또박또박 눌러 담은 손편지를 전달했다. 백 대표는 지금까지도 핸드볼 선수 학생의 편지는 안방에 걸어놓고 매일 같이 본다고 한다.
손님들도 기부에 동참했다. 곳곳에 모금함에 돈을 기부하는 것은 물론이다. 백 대표는 “몇 번 돼지저금통을 전달 받은 적이 있다”며 “좋은 일에 써 달라고 꽉 찬 돼지저금통을 직원들에게 주고 간다더라”고 뿌듯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홀트학교, 꽃동네 등 이름을 보고 직접 기부, 봉사하시는 분도 생겼다”고도 했다.
백 대표는 최근 추가로 더 수익을 창출해 더 많은 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시중에 나와있는 밥차를 직접 개조했다. 백 대표는 “1년에 4번 이상은 나 혼자 돌아다니면서 번외 봉사를 해서 홀트 학교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위에 더 기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군부대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떡볶이 트럭 봉사를 가고 싶다. 가서 장병들에게 원없이 떡볶이를 먹여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재료비만 빼면 모두 홀트 학교에 기부된다. 오옛떡 떡볶이 트럭, 체육대회 식사 고민하시는 군대라면 언제든 연락주시라”며 호기롭게 말했다.
오옛떡은 인천, 부천에도 지점이 생겼다. 하지만 그의 장사도 기부도 멈추지 않는다. ‘목숨이 다 할 때까지’ 기부와 봉사를 하겠다고 밝힌 백 대표. “오옛떡 직원들과 자신의 아이들이 이 선행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바램을 밝히며 “기부는 매일 아침 나와 하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부와 봉사가 없다며 아마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한 달 목표한 기부금을 채울 수 있다.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해 매일을 살아간다. 한 순간도 느슨해질 수 없다”고 빛나는 눈빛으로 말했다. “기부도 봉사도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며 너털스레 웃음을 보인 그는 “지금 인연을 맺은 곳에 기부와 봉사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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