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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청소년 정신건강…늘어 가는 극단 선택(2)
“생중계 동영상 있으신 분? 2000원에 삽니다”
최근 극단적 선택의 순간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생중계한 10대 여학생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해당 여학생을 포함해 닷새 만에 서울 강남 지역에서만 3명의 10대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비보가 전해진 직후였다. 그만큼 온라인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극적인 정보를 찾아 소비하기 쉽고 모방 위험도 커진 것이다.
한국은 17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36.6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의 자살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 10대는 전년 대비 10.1% 증가했다. 전체 10대 사망률 가운데 43.7%에 달하는 높은 비율이다. 10대 사망 원인 2위인 악성신생물(암·14.2%)과 3위인 교통사고(11.4%)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학업 스트레스, 우울증, 학교 폭력, 가정불화 등이 원인이 돼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사망보다 더 많은 청소년이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명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를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어른들이 조기에 나서 아이들의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자해는 극단적 선택 전에 보내는 신호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국내외 여러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의 자해 행동은 자살 의도 유무로 나뉜다. 청소년의 자해 행동을 목격했다면 먼저 그 의도를 파악해 별개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서울시자살예방센터 운영위원장)는 “자해는 극단적 선택의 경고 징후이기는 하지만 모든 경우에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며 “자해의 80% 정도는 (극단적 선택의 의도 없이) 청소년기에 겪는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한 동기에 의해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만약 청소년의 자해 행동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마 대부분은 자해 행동 자체에 집중하고 일단 스스로 상처 내지 못하게 막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청소년이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행동은 표면적인 것일 뿐 학업 부담, 학교 폭력, 따돌림, 가정 불화, 학대, 우울증 등 근본적인 정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힘들다는 마음을 먼저 알아주세요”
고등학교 1학년인 Y양은 유튜브에 자신의 우울 증상과 자해 관련 영상을 만들어 올린다. 학업 때문에 스트레스와 긴장, 불안감이 심해지면 팔뚝에 스스로 상처를 내고 붕대를 감는 모습 등을 영상에 담는다. SNS의 일명 ‘자해계(익명으로 운영하는 자해 계정)’에는 일부러 피가 많이 나게 하는 사혈 등 아주 심각한 사례가 넘쳐난다.
자해 청소년 가운데는 Y양처럼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 부정적 정서에 압도돼 어찌할 바를 몰라 정신적 고통을 신체적 고통으로 바꾸려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 뇌에서 진통제 역할을 하는 내인성 오피오이드(Opioid)가 분비되는데, 이 물질은 아편(Opium)에서 이름이 유래된 일종의 마약성 성분이다. 진통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즉, 몸에 상처를 내 정신적인 고통을 잠시 잊는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되는 느낌은 일시적이라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점차 자해 정도가 심해질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SNS에서 10대끼리 자해 사실을 공유하는 것이 또래 동질감을 유발하는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2018년 교육부가 실시한 ‘학생 정서·행동 특성 검사’에서 중학생의 7.9%, 고등학생의 6.4%가 ‘자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래끼리는 자해 사실을 비교적 자유롭게 공유하지만 가정이나 학교 등 어른들 앞에서는 수치심을 느끼고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죄책감을 느낄 때 자신을 처벌하려고 하거나 △죽을 만큼 힘들지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려고 하거나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길 때 주변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등 청소년의 자해 행동에는 굉장히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작은 신호에도 위험 알아채기
자해를 오랜 기간 지속하거나, 동시에 여러 상처를 내거나, 부상 정도가 심각하다면 극단적 선택의 위험 신호로 볼 수 있다. 자해 이외에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징후는 성인의 경우와 유사하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인다.
●언어 변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암시·계획을 언급한다 ·자기 비하의 말을 한다
●행동 변화 ·약을 모으는 등 구체적 수단을 마련한다 ·중요한 것을 남에게 주는 등 주변 정리를 한다 ·식사나 수면에 큰 변화가 있다 ·혼자 있으려 하고 대화를 회피한다
●정서 변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한다 ·기존 관심이 있던 것에 흥미를 잃는다 ·‘우울하다’ 또는 ‘나 때문이다’와 같이 우울함과 죄책감을 표현한다
출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물어봐도 될까?
언론 보도에서는 ‘극단적 선택’ 등 완곡한 표현을 쓰도록 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관계에서 극단적 선택의 위험 징후를 목격했을 땐 “자살을 생각하고 있니?”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으로 물어야 한다. 보건복지부 지원 청소년 자해 행동 예방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한 김재원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직접 물어봐야 직접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청소년 입장에서는 직접적 언어로 물어볼 때 ‘이 사람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할 수 있다”며 “자살에 대해 직접 물어보는 것이 없던 자살 생각을 유발하거나 자살 위험을 높이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고 밝혔다.
아무런 희망이 없고, 도움 청할 곳이 없다고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주변 사람과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낮추는 환기 효과가 있다. 또 주변에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면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마음과 살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버텨 온 내면의 힘에 대해 인지시켜 주면서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동안 버텨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 등의 메시지로 지지하고 공감해줘야 한다. 이밖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기관을 소개해주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구체적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면 이를 당사자와 합의해 폐기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자해 청소년의 경우 신체적 고통을 스스로 유발할 정도로 힘든 정서적 고통에 초점을 두고 다가가야 한다. “자해는 절대 안 돼”라며 무조건 멈추라는 태도 보다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구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라고 청소년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태도로 다가가야 한다. 자해를 언제, 어떻게, 왜 하는지 취조하듯 묻거나 충고하는 것도 금물이다.
자해 행동을 보고 놀라거나 불편한 감정을 억지로 감추고 괜찮은 척 다가갔다간 오히려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느낀 청소년이 마음의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진솔한 대화를 위해서라면 청소년에게 다가가기 전에 스스로 먼저 충분히 진정하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 이후에 자해를 또 했는지, 안 했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근원적 스트레스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다른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없는지 등에 관심을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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