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망 여고생 ‘표류’ 때, 외상센터에 빈 병상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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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 거절한 병원 4곳 제재
응급실 거절기록 의무화 추진

뉴시스
3월 대구에서 추락 사고를 당한 여학생이 병원을 찾아 헤맬 당시, 한 병원 권역외상센터는 빈 병상이 있었는데도 ‘자리가 꽉 찼다’며 수용을 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권역외상센터는 추락이나 교통사고 등 중증외상환자 전용 응급수술 시설이다. 대구의 한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한 이 여학생은 159분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결국 숨졌다.

보건복지부는 4일 소방청·대구시와의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환자를 받아주지 않은 병원 8곳 중 4곳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내리는 한편 전국 응급실에 환자 이송 거절 기록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건 당일 경북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대구소방본부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A 양(17)을 받아줄 수 있는지 전화로 물었을 때 ‘중증외상환자가 몰려 자리가 없다’는 취지로 거절했다. 하지만 복지부와 소방청, 대구시가 합동 조사한 결과 당시 센터엔 빈 병상이 1개 있었다. 진료 중이던 다른 환자 상당수는 경증이었다. 환자 수용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경북대병원 관계자는 “따로 공식 입장을 낼 게 없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전문가 자문 결과 경북대병원뿐 아니라 대구파티마병원과 계명대 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도 그날 정당한 사유 없이 A 양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복지부는 이들 병원 4곳에 △책임자에 대한 조치 △재발 방지책 수립 △환자 거부 사유 기록 등 시정명령을 내렸다. 경북대병원엔 2억2000만 원, 나머지 3곳은 각각 4800만 원의 보조금을 삭감하고, 대구파티마병원과 경북대병원에는 각각 3674만 원, 1670만 원의 과징금도 물린다.

복지부는 향후 전국 모든 응급실에 환자 거부 사유를 기록하게 하고, 이를 보조금 평가 등에 반영할 방침이다. A 양의 표류는 ‘수술 등 최종 치료가 안 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받지 않는다’는 응급실의 오래된 관행 때문이라고 보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3월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엔 없었던 내용이다.



‘수술 의사 부족하면 일단 진료거부’ 관행에… 대구 여고생 희생


이송 거절 병원 4곳 시정령-과징금
병원간 전원 어려워 중증환자 기피
검사도 않고 “의사 없다” 거부 일쑤
“전원 쉽게 할 응급체계 서둘러야”

보건복지부는 3월 대구 여고생을 받아주지 않았던 병원들에 행정처분을 내리며 ‘수술 등 최종 치료가 안 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거부하는’ 병원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중증 응급 환자를 수술할 의료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병원 간 전원(轉院)이 어려운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행정처분을 반복해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최종 치료 가능해야 수용’ 관행에 제동
A 양(17)이 3월 19일 오후 2시 15분경 4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진 채 발견됐다. 이때 겉으로 드러난 증상은 크지 않았다. 뒤통수와 발목이 부어 있었고, 혈압과 맥박은 정상이었다.

이런 경우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는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 가벼운 타박상이면 간단한 응급처치만 한 뒤 귀가하면 된다. 하지만 뇌출혈이라면 신경외과 전문의가 수술해야 한다. 골반이 부러져 동맥이 찢어졌다면 정형외과와 혈관외과 등 의료진이 동시에 수술에 투입돼야 한다. 따라서 전문의가 있든 없든 일단 환자를 받아서 검사하고 전문 의료진이 없으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게 응급의학 교과서에 적힌 진료 절차다.

그런데 당시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신경외과 전문의가 학회에 참석하느라 부재중이라며 119 수용 문의를 거부했다. 계명대 동산병원은 외상외과 의료진이 다른 환자를 수술 중이라고 했다. ‘만에 하나’ A 양이 뇌출혈이거나 중증외상이면 수술할 의료진이 없으니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는 얘기였다.

복지부는 이런 이유가 환자를 받지 않을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에게 어떤 진료가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외상 수술이 시작됐다거나 신경외과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거부한 건 응급의료법 위반이다”라고 설명했다.

● “꽉 막힌 병원 간 전원부터 해결해야”
의료계에서는 복지부의 이런 조치에 대해 “최종 치료 여력이 없는 병원이 환자를 받기를 꺼리는 배경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수도권에는 생명과 직결된 수술을 하는 이른바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이 부족하다.

중증외상이나 뇌출혈, 급성 심근경색 등 모든 중증 응급 환자를 직접 커버할 수 있는 병원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결국 A 양처럼 어떤 전문 의료진이 필요해질지 불확실한 환자는 수용할 때부터 전원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선 바로 그 ‘전원’ 단계가 동맥경화처럼 꽉 막혀 있다. 전원 보낼 병원을 찾느라 응급실 의사가 전화를 수십 통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의료진과 병상, 장비에 여력이 있는 병원을 한 번에 찾아주는 시스템이 없고, 이를 중간에서 조율해 주는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현 체계에서 최종 치료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환자를 받았다가는 오히려 해당 의료진이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치료 못 할 환자를 왜 오라고 했냐’며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도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하고 전원 시스템을 보강하는 게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4일 발표에도 “응급의료기관의 최종 치료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이를 실현할 대대적인 인력 보강이나 건강보험 진료비 개혁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빠져 있다. 박향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당장 보완할 수 있는 부분부터 대책에 담았다”며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력 대책 등도 착실히 실행에 옮기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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