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아기 ‘김치’ 살린 기억나”…소록도 벨기에 의사 52년만에 훈장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5일 19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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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벨기에 한국대사관 제공)
“50년 전 소록도에서 쌀가마니를 덮고 죽어가던 생후 3개월 된 아이 ‘김치’를 살린 기억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잊혀질 뻔한 ‘소록도 벨기에 의사’ 샤를 나베 씨(81)가 4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베 씨는 “한국 정부가 나를 인정해주니 큰 영광”이라고도 했다. 모란장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 유공자에게 수여된다.

나베 씨는 1960년대 후반 전남 고흥군 소록도 한센병 병원에서 5년간 의사로 일했지만 정부에서는 최근까지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주벨기에 한국문화원에 따르면 벨기에 KU루뱅대 의대를 졸업한 나베 씨는 27세이던 1966년 벨기에 한센병 퇴치 인권단체 ‘다미안 재단’과 한국 보건사회부 업무 협약에 따라 한국 행을 결정했다. 한센병 치료 경험을 쌓기 위해 한국에 오기 전 인도로 파견돼 수련을 했다.

1967년 지금은 세상을 떠난 부인 풀레트 씨 및 딸 아녜스와 한국 땅을 밟은 그는 1971년까지 소록도 병원에서 의사 1명, 간호사 5명과 함께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했다. 주 사나흘 정기적으로 치료했고 주말에는 소록도 밖에서 온 환자들까지 보는 등 약 4000명을 돌봤다. 부인 풀레트 씨는 한국어를 배워 환자 이름을 서류에 기재하는 일을 도왔다.

나베 씨는 지병 탓에 1971년 양국 협정 종료 기념식 직전에 먼저 벨기에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도 1985년, 2001년 소록도를 찾을 정도로 소록도를 그리워했다. 1980년대에는 벨기에 비영리기구 ‘세상의 어린이’ 설립에 참여해 한국 아동이 벨기에에 입양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는 이날 훈장 수여식에서 “소록도를 다시 찾았을 때 위생 상태와 치료 수준이 발전한 것을 보고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업무 협약 종료 50주년을 맞은 2021년 그는 소록도에서 이름 없이 김치로 불린 아이를 살린 경험을 담은 ‘김치’라는 자전적 소설을 펴냈다. 책 수익금은 모두 기부했다. 그의 소록도 봉사는 아드리앵 카르보네 루뱅대 한국학연구소장의 연구로 우리 정부에까지 알려졌다. 카르보네 소장은 이를 한국대사관에 알렸고 정부는 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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