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아침식사 1000원…“문 닫는 날까지 안 올려” [따만사]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5월 11일 12시 00분


충북 청주 만나김치식당 박영숙 사장 인터뷰

충북 청주시 남이면 만나김치식당 박영숙 사장(왼쪽)·아침식사 후 바구니에 1000원짜리 지폐를 놓고간 모습.
충북 청주시 남이면 만나김치식당 박영숙 사장(왼쪽)·아침식사 후 바구니에 1000원짜리 지폐를 놓고간 모습.
‘아침식사(오전 6~9시) 천 원’. 충북 청주시 남이면 만나김치식당 메뉴판에 쓰인 실제 가격표다. 11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2023년 3월 충북지역 기준 자장면의 평균 가격은 6000원으로 지난해 같은달(5429원)보다 약 11% 올랐다. 냉면 8786원(12%), 삼계탕 1만3857원(10%), 김치찌개·백반 7714원(7%) 등도 크게 올랐다. 이처럼 먹거리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서민들의 부담이 높아진 가운데 이 식당은 16년 전 가격을 그대로 받고 있다.

지난달 28일 만난 만나김치식당 사장 박영숙 씨(69)는 “‘1000원 밥상’만 하면 어려웠을 텐데 점심·저녁 장사 장 보는 김에 같이 보면 되니까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가 아침식사를 1000원에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하루 평균 70~100명이 아침식사를 위해 새벽부터 이 식당을 찾는다. 주고객층은 공사 현장 근로자와 배달 노동자, 인근에 홀로 거주하는 어르신 등이다. 메뉴 구성은 밥과 국, 밑반찬이다.

박 씨는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5시 40분경 거주지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한다. 그는 “식당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손님들이) 기다리고 계신다”며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일찍 드시고 가셔야 하기 때문에 (오픈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안 된다”고 했다.

“개업하자마자 장사 잘 돼…환원할 생각으로 시작”
만나김치식당 메뉴판.
만나김치식당 메뉴판.

박 씨는 청주 지역에서 미용실을 운영한 미용사였다. 주로 여성 고객들만 상대한 그는 손님들 사이에서 ‘김치 장인’으로 통했다. 그 또한 직접 담근 김치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이에 김치를 판매하고자 2006년 식당을 차린 것이다. 박 씨는 “개업하자마자 장사가 너무 잘 됐다”고 웃었다. 예상치 못한 높은 매출에 그는 손님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줄 방법을 찾았다. 그러던 중 매달 모임을 가진 인근 가구단지 대표들이 찾아오지 않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박 씨는 “3개월 만에 오셔서 물어보니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당분간 모임을 중단했다더라”며 “그분들 때문에 아침식사를 무료 제공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료 식사에도 손님은 20명 내외에서 더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박 씨는 “손님들이 공짜로 먹기 부담스러워서 못 오겠다며 1000원이라도 받으라더라. 그래서 바구니를 놔둘테니 놓고 가고싶으면 돈을 놔두고, 그냥 가고싶으면 그냥 가시라고 했다”고 했다. 이후 손님은 120~150명까지 늘어났다. 초반에는 손님이 올 때마다 밥과 국, 계란프라이 등을 일일이 세팅했지만 1000원씩 받기 시작하면서 손님이 밀려들자 상차림 세팅은 뷔페처럼 각자 담아먹는 셀프가 됐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다.

기억에 남는 손님과의 일화도 꺼냈다. 약 3년 전, 종종 아침밥을 먹으러 오던 변호사가 그의 계좌번호를 물어본 것. 박 씨는 단순히 식대를 지불하려는 줄만 알았다고 한다. ‘띵동’. 이체 메시지가 울려 확인했더니 무려 100만 원이 찍혀 있었다. 박 씨는 “식대를 잘못 넣은 것 같다고 했더니 제대로 넣었다더라. 알고보니 며칠간 아침식사를 하면서 한 손님이 바구니 속 지폐를 가져가는 것을 본 것”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마음이 안 좋았다며 보낸 돈으로 쌀을 사라고 했고, 박 씨는 실제로 쌀 100만 원어치를 구매해 그에게 인증사진을 보냈다. 박 씨는 “너무 고마운 분”이라고 회상했다.

“수백 명 노인에 간식 제공, 수년간 반찬 전달하기도”
가정식 백반 메뉴.
가정식 백반 메뉴.

박 씨는 어린 시절부터 나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전에 시골길에서 헐벗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아버지가 항상 그분들에게 옷을 벗어주시거나 먹을거리를 사다주셨다”고 했다.

박 씨의 나눔은 식당을 열기 전부터 시작됐다. 시에서 주최한 노인일자리박람회에 모인 수백 명의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우유·빵·김치 등을 나눠줬다. 그는 이에 대해 “각 기업에서 나와가지고 하는 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그러면 기다리는 노인들이 배고플테니까 (준비한 것)”라고 했다. 한 복지관을 통해서는 형편이 어려운 10~20가구에 수년간 반찬을 제공하기도 했다. 박 씨는 “한 집에 반찬 3가지씩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전달했다”며 “복지관에는 김치를 담가 20㎏씩 드리곤 했더니 복지관 센터장이 ‘참 고마운 식당’이라고 쓴 명판을 하나 줬었다”고 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냥 김치 장사해서 김치가 있으니까 드린거지, 내가 주고 싶으니까”라고 말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 인사 받으면 고맙고 행복해”
식당 내부(위)와 아침식사에 나오는 반찬.
식당 내부(위)와 아침식사에 나오는 반찬.

박 씨는 아침식사 시간에 고정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1년 365일 중 명절(구정·추석)에만 식당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3월부터 일요일 아침 장사만 쉬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다. 공사 현장은 일요일에 쉬니까”라며 일요일 아침에 쉬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16년 만에 만끽하는 짧은 휴식에 그는 “수십 년 한 게 몸에 배어서 3시간 더 뒹굴뒹굴해도 육체적으로는 (힘든 게) 똑같다”면서도 “저녁에 부담감이 없더라. ‘내일은 일찍 안 일어나도 된다’ ‘아침밥 안 해도 된다’ 생각하니 정신적으로는 편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아침식사를 판매할수록 적자가 아니냐는 물음에 “계산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많이 오시면 좋지. 돈 벌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 손님에게 환원하려고 시작한 거니까”라며 “손님들이 아침식사를 1000원 더 올리라고 그러는 데 안 올렸다. 식당 문 닫는 날까지 1000원만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손님들의 감사 인사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먹고 가실 때 형식적으로 ‘잘 먹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잘 먹고간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다. 고맙다는 소리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 모습을 볼 때 내가 더 고맙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소망은 다름 아닌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건강’이었다.
“지금처럼 변함없이, 그 건강 그대로 잘 유지하시고 꾸준히 오셔서 식사하시고 행복함을 느끼고 가시면 좋겠다. 건강하셔야지.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나도 건강해야 하고.”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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