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간 합의가 없으면 남녀 상관없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최연장자가 민법상 ‘제사 주재자’를 맡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무조건 아들에게 우선권을 줬던 기존 대법원 판례가 15년 만에 깨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관 조재연)는 숨진 A 씨의 유족 간 벌어진 유해 인도 사건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며 이같이 판단했다.
법원은 “제사 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하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 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최근친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와 달리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제자가 되고, 공동 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 장녀가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봤던 종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원고들은 망인 A 씨의 배우자 B 씨, 장녀와 차녀다. A 씨는 B 씨와 혼인관계에 있던 중 C 씨(피고)와 아이를 가졌다. 그렇게 A 씨와 C 씨 사이에 장남이 태어났다. 이후 A 씨가 사망하자 장남 C 씨는 유체를 화장하고, 그 유해를 B 법인이 운영하는 추모공원 내 봉안당에 봉안했다. 이에 원고들은 피고들을 상대로 망인의 유해 인도를 구하는 해당 사건 소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A 씨의 유해에 대한 권리가 공동상속인들 중 누구에게 있는가’가 주요 쟁점이 됐고, 법원은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며 “과거에 조리에 부합하였던 법규범이라도 사회관념과 법의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면, 대법원은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을 배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법규범이 현재의 법질서에 합치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여성 상속인이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의 동의 없이 제사 주재자가 될 수 없고, 공동 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여성 상속인은 피상속인에게 아들, 손자가 있다는 이유 만으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사용 재산 승계에서 배제된다”며 “이와 같이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이를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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