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로 들어온 사진은 돌려 드리지 않습니다 - 어린이 1000명 얼굴 사진 모으기 프로젝트[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3일 11시 00분


백년 사진 No.18

▶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통해 요즘 사진에 대해 생각해보는 백년 사진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봐왔던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이미지의 원형 모습을 찾아가보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좀 특별한 사진을 하나 골랐습니다. 소위 콤보(combo) 사진, 조(組)사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23년 5월 7일자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안내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어린이 사진을 구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1923년 5월 7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어린이 사진 모집 공고


기사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본지 1천호 기념호에 게재코자 – 아동 1천명의 사진을 모집

돈 들지 않고… 재미있는 계획… 영구한 기념>

오는 25일에 발행되는 동아일보는 제 일천호가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야 ‘일천호 기념호’를 발행하기로 방금 준비중인데 이 기념호를 장식하며 겸하여 독자여러분의 가정에 한 즐거움을 돕고자 우리 동아일보 독자의 가정에 길리우는 어린이의 사진을 일천명위한 하고 널리 모아서 당일 발행하는 신문지에 게재하는 것은 다만 일시에 자미가 있을 뿐 아니라 후일에 또한 영구히 좋은 기념이 될것이니 다수히 사진을 보내여서 흥미있는 이 계획을 원조하야 주시기를 바랍니다.

1. 보내실 아이의 사진은 아무쪼록 12~13세 이내 되는 것이 좋으며

1. 사진은 어떠한 종류이든지 무방하며, 여럿이 박힌 것이라도 관계치 않고,

1. 보내는 방법은 2전 짜리 우표를 붙이고 반드시 [경성 화동 동아일보사 사진부행]이라고 피봉에 해자로 기록하여야 하며

1. 금월 십오일까지 도달하도록 보내시되 기한 전이라도 일천명이 되면 소용이 없을 터이니 아무쪼록 초생안으로 속히 보내시는 것이 좋으며

1. 사진을 신문에 게재하는 데는 한푼도 돈은 받지 아니하며 보내신 사진은 다시 보내 드리지 않습니다.

▶ 동아일보가 창간된 게 1920년 4월 1일이었고 1923년 5월 23일에 천 번째 신문을 만들게 되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천 명의 어린이 얼굴 사진을 지면에 싣겠다는 안내 기사입니다.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영원히 기록되는 프로젝트이니 많은 참여 바란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13세 미만의 어린이 얼굴이면 좋겠고, 독사진도 좋고 단체 사진도 좋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5월 15일까지 동아일보 사진부로 우편 발송하되 천 명이 확보되면 먼저 도착한 사진으로 작업을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신문사로 온 사진은 되돌려주지 않겠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천 명의 어린이 얼굴은 정말 신문 지면에 실릴 수 있었을까요? 말이 천 명이지, 당시의 기술로 그 많은 얼굴을 조합해서 지면에 프린트 할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안내 기사에서 약속했던 1923년 5월 25일자 동아일보 지면을 확인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지면에 대략 천 명의 얼굴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생각보다 각각 작지 않은 크기의 얼굴이어서 본인과 가족들은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해상도입니다. 1923년에 10대였던 이들은 30대 중반에 해방과 한국 전쟁을 겪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겠죠.

1923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전국 어린이 1천명의 얼굴 사진 콜라쥬.
1923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전국 어린이 1천명의 얼굴 사진 콜라쥬.


▶ 사진기자 하면서 마음에 걸렸던 숙제 2가지가 있었는데, 모두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부담이 덜어졌습니다.

첫째, 필름을 사용하던 2000년 대 초반까지 화학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문제였습니다. 촬영한 필름을 사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상과 인화라는 화학 처리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폐수가 나왔습니다. 폐수에 포함된 은을 추출해서 수익을 발생시킨다는 폐기물 업체에서 걷어 갈 수 있도록 사무실에 드럼통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무실에서 폐수가 하나도 안나온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직원들 호흡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하수도로 조금씩은 흘러가기도 해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런 과정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즈음 신문사에서 필름이 사라지고 디지털 카메라로 세대교체 되면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 마음에 걸렸던 문제가, 사진을 돌려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었습니다. 신문에 쓰기 위해 제보자 또는 뉴스인물로부터 사진을 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습니다. 사진부 기자와 사회부 기자가 구해 온 사진은 편집기자에게, 이미지 리터치 팀원에게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팀원으로 연속해서 전달됩니다. 사진기자인 제 손으로 다시 돌아와 사진 주인에게 돌려주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어느 프로세스에서 사라졌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사진의 원본을 신문사가 가져다 지면을 만드는 부담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100년 전, 천명의 어린이 사진을 구하면서 돌려줄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을 보며 제가 놓쳤던 몇 번의 숙제가 다시 떠오릅니다. 완벽하게 반환되지 않았을 자료들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백년 후의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천 명의 어린이 사진에서 여러분은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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