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조용히 해.” “뛰면 안 돼.” “만지지 마.”
엄마들이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3가지를 꼽으라면 아마도 위 세 가지가 아닐까. 기자는 아이가 한 명도 아니고 넷이나 되는지라 한 번 나가면 저런 말을 수십, 수백 번씩 되뇐다. 다자녀 가정이라 아이들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우리부터 잘 해야지, 그래야 애들 하나, 둘 있는 집들도 싫은 소리 안 듣는다’는 모종의 책임감이랄까.
그럼에도 애들은 원래 떠들고, 뛰고, 만지며 노는 게 당연한데 다 ‘하지 말라’고 단속해야 하는 상황이 미안하고 아쉽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유달리 아이들에게 엄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 ‘전국의 노키즈존 542곳’
최근 제주 의회에서 발의된 한 조례안이 화제가 됐다.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는 11일 더불어민주당 송창권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주도 아동 출입제한업소 지정 금지 조례안’을 심의했다. 이른바 ‘노키즈존’을 금지하자는 내용인데, 조례안은 ‘도지사는 도민 차별과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키즈존 지정을 금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의원들과 전문위원, 도청 담당과장 등 심의에 참석한 관계자들 대부분 취지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상위법과의 충돌, 영업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통과에 난색을 표했고, 결국 조례안 심사는 보류됐다.
법안 심사에 앞서 제주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의 노키즈존은 542곳, 제주에만 78곳에 이른다고 한다. 술집, 유흥업소 등 애초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업장을 제외한 숫자다.
이것이 비단 한국에서만 관심을 갖는 이슈는 아닌 모양이다. 12일 워싱턴포스트는 ‘당신이 식당에 아이들을 데려갈 수 없다면 그것은 차별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한국의 노키즈존 이야기가 중심이었지만, 기사를 보니 미국과 아일랜드에도 아이들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가게들이 있다고 했다. 일본과 말레이시아, 인도의 일부 항공사는 ‘어린이, 영유아로부터 떨어진 좌석’ 옵션을 출시했고, 특정 연령 이하 아동은 들어올 수 없도록 출입하한연령을 둔 도서관과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 부모의 단속이 우선
아이 넷을 키우며 웬만한 말썽에는 인이 박인 기자도 공공장소에서 종종 아이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다. 한두 달 전쯤에는 한 카페에서 옆자리에 앉은 영유아 둘이 너무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서 카페 직원을 통해 에둘러 민원을 전달한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 참다 참다 민원을 전달한 이유는 아이들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부모의 괘씸한 태도 탓이 컸다. 너댓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무얼 알겠나. 카페 안에 있는 모든 손님이 힐끔거릴 정도로 아이 둘이 큰 소리로 떠들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아빠인 것처럼 보이는 성인 남성은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면 그때마다 건성으로 ‘조용히 하라’고 할 뿐이었다.
사실 부모가 잘 단속만 한다면 아이들이 크게 ‘민폐’가 될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작정하고 피우는 말썽이 아니라면 애들은 대체로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지 ‘모르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면 알려주면 된다. 수시로 하면 안 되는 것을 일러주고 장소에 합당한 예절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기자는 아이들 넷을 데리고 매주 주말마다 식당과 카페, 박물관을 돌아다니는데, 지금껏 단 한 번도 아이들이 ‘시끄럽다’거나 ‘말썽을 피운다’며 주변으로부터 항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 노장애인·어르신존은 없는데…
하지만 가끔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애초 떠들고, 뛰고, 만지면서 노는 존재다. 그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천성을 계속 억누르고 과하게 제한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에게 피해를 끼칠 정도로 심하면 당연히 제지해야겠지만, 배려하고 수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도 배척하고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어떤 자리에서 한 지인이 “요새 카페에서 공부하는데 아이 데리고 오는 가족들이 옆에 앉으면 거슬리고 집중이 안된다”고 불평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인에게 별말을 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페는 독서실이 아닌데 공부를 할 것이었으면 본인이 귀마개를 들고 가든가, 아니면 다른 조용한 곳으로 장소를 옮겼어야지 않나? 옆자리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고.’
어른들도 모두 아이였을 때가 있다. 아이들은 현재 우리 전체 인구의 7분의 1을 차지하는 큰 인구 집단이다. 이들이 어리고,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의 권리와 편의는 너무 무시되고 있는 게 아닐까.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나 목발을 끌고 다니는 게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노디스에이블드존(no disabled zone·장애인금지구역)’을 만드는 업장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르신들이 주문·식사하는 게 더디고 귀가 안 들려 시끄럽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어르신금지구역)’을 만드는 업장이 있다면 당장에 노인 단체들이 반발하고 비판 기사가 들끓을 것이다. 그런데 왜 노키즈존은 용납이 되는가.
● 아이 친화적 시설·환경도 고민해야
아이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사실 아이들이 ‘민폐’가 되는 건 장소가 그만큼 어른 위주의 시설과 환경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식당이 있는데, 맛있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그 식당 한 편에 마련된 작은 놀이공간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싫은 소리 들을 걱정 없이 식사 전후로 그곳에 가서 신나게 논다. 부모는 부모대로 여유롭게 대화 나누고 커피라도 한 잔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좋다.
비행기에 타면 아이들에게 ‘키즈 키트(kids kit)’ 같은 것을 나눠 준다. 비행시간 동안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주변에 소음 피해를 주지 않게끔 사부작거리며 집중할 수 있는 작은 장난감들을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즘 식당이나 숙소에서도 이런 키트를 나눠주는 곳이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종이 식판이나 접기 놀이를 할 수 있는 거리만 주어도 좋다. 이런 공도 들이기 어렵다면 하다못해 가게 공간 한 편에 어린이 방송만 틀어놓아도 아이들 소음이나 말썽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아이들이 물건을 부수고 무언가를 쏟는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전시물도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게 진열하고, 식기도 아이들 친화적으로 바꾸면 된다. 강화플라스틱 그릇이나 미끄럼방지 접시, 뚜껑 달린 컵 같은 것 말이다. 식당에서 예쁜 아이용 식기가 별도로 나오면 별것 아닌데도 아이들은 더 소중히 자기 식기들을 챙기고 살핀다.
심사가 보류된 제주도의 조례안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영업장 내에서 아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제도적 지원 △아동의 공공장소 이용에 대한 보호자 교육 △차별 금지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 추진. 어떤 문제든 규제와 처벌보다는 예방이 우선이다. 장애인, 어르신 등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통행하기 좋게끔 문턱을 없애고 자동문을 만들 듯, 아이들도 문제가 있다고 배제하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환경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아이들에게 쉽게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면 언젠가 노디스에이블드존, 노시니어존, 노아줌마·아재존이 생길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배척되는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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