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금지를 위반한 청년을 데리고 있었는데, 공수부대원 2명이 다가와 ‘비켜’, ‘비켜’ 하더니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 대검으로 찔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전투경찰로 복무했던 유영옥 씨(67·사진)는 1980년 5월 20일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유 씨가 최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한 일기장에는 이처럼 1979년 겨울부터 1980년 9월 초까지 광주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전남도경에서 제2중대원으로 복무했던 유 씨는 1980년 5월 18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체포된 남녀 데모대 2명이 계엄군의 구두에 채이며 끌려가고 있다. 점심밥조차 넘어가지 않는다”고 적었다. 1980년 5월 21일에는 “새까맣게 불타 쌓인 차량들이 골격만 남은 채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다”고 썼다.
그 밖에도 일기장에는 광주에 파견된 공수부대가 무자비하게 시민을 탄압한 일, 집단 발포가 있던 날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한 상황 등이 포함돼 있다. 또 계엄군 진압이 끝난 후 31사단에서 진행된 삼청교육대 실상도 들어 있다.
유 씨는 “일기장에 적힌 참상은 전경들에게도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민간인을 향해 발포했던 계엄군이 대검으로도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증언은 처음이 아니다. 당시 3공수여단 중사로 광주역에 있었던 김귀삼 씨(68)도 올 3월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총에 대검을 장착해 시민군으로 저항하다 잡혀온 분을 찔렀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다만 대검 학살 피해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는 “가해자의 고백과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지만 희생자는 특정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16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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