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일터를 찾아서]
팀장에 재택근무 시간도 보고
고용주는 2년간 기록 보관하고
근로감독관은 수시로 확인해
고용노동부가 올해 3월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놨을 때 가장 많은 비판이 쏟아진 정책 중 하나가 바로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였다. 근로자가 초과근로를 하면 해당 시간의 1.5배를 포인트처럼 적립한 뒤 나중에 몰아서 휴가로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정부는 직장인들이 이 제도를 이용해 ‘제주 한 달 살이’ 같은 장기 휴가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업 현장의 반응은 달랐다. 많은 직장인들이 “업무 때문에 혹은 눈치 보느라 지금 있는 연차도 다 못 쓰는데 한 달 휴가는 그림의 떡”이라며 냉소를 보냈다.
하지만 독일은 초과근로시간을 보상휴가로 전환해 근로자들이 언제든 장기 휴가를 쓰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관리 시스템’이 있다.
기자가 방문한 독일 현지 기업들은 모두 근로자들의 실제 출퇴근 시각을 기록,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3월 29일 독일 바이에른주 하멜부르크의 고무 재생 공장 ‘라이펜뮐러’의 공장 출입문 옆에는 근로자들이 출입증을 찍어 출퇴근 시각을 기록할 수 있는 기기가 부착돼 있었다. 우베 뮐러 라이펜뮐러 대표는 “근로자들이 출퇴근 시 또는 잠시 외출할 때에도 이 기기에 출입증을 찍도록 하고 있다”며 “근로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고용주의 의무이고, 근로감독관들이 이를 수시로 확인하기 때문에 소규모의 공장들도 모두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 기록 기기가 없어도 엑셀 등 문서로 근로시간을 관리하는 기업도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한 화학기업의 인사 담당 시니어매니저 카르스텐 리데 씨는 “직원 누구나 출퇴근 시각을 팀에 보고하고, 팀장은 이를 엑셀에 정리해 관리한다”고 말했다. 독일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해당 제도가 활성화돼 있었다. 한국타이어 구주본부 이상훈 본부장은 “출퇴근할 때는 물론이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30분간 밖에 나갈 때도 시간을 체크하고 다녀온다. 일하는 시간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홈오피스(재택근무)’를 할 때도 본인의 출퇴근 시각을 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근로시간을 정확히 기록해야 근로자의 근태를 파악함은 물론이고 일한 만큼 수당을 주거나 보상휴가를 보내줄 수 있다. 우리에 앞서 근로시간계좌제를 시행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근로시간 기록이 의무사항이다. 고용주는 초과근로시간을 포함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 기록을 작성하고 최소 2년간 이를 보관해야 한다.
독일 노동경제연구원(IZA) 수석연구원 울프 리네 박사는 “4, 5년 전에는 실제 근로시간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고용주가 자의로 적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며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근로의 형태가 점차 ‘하이브리드’(재택+사무실 근무)화하면서 정확한 근로시간 기록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지금은 일부 예외 업종을 제외한 모든 사업장이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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