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오명에 극단적 시도까지…교단 그립지만 두려워”

  • 뉴스1
  • 입력 2023년 5월 15일 09시 59분


PD수첩 2023년3월7일 방영분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캡처2023.5.14./뉴스1
PD수첩 2023년3월7일 방영분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캡처2023.5.14./뉴스1
“진정제를 먹고도 벌벌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아동학대 민사재판에 출석했어요.”

학생들 싸움을 말리던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학부모에게 고소됐다가 최근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1년여간 홀로 법정투쟁을 해야 했던 이 교사는 극단적 시도까지 해야 했던 고통을 토로했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교권보호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전체 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제42회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광주 모 초등학교 교사 A씨(44·여)는 뉴스1 취재진에 “올해는 이미 학급 배정이 완료돼 담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내년에는 가능할 것 같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20년 차 교사인 A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사의 꿈을 키웠다. 하루하루 버거웠던 초임교사 시절을 거쳐 10년차가 넘어서니 수업이나 학부모와의 관계·연구활동에 있어서도 자신감을 붙여 왔다.

생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옷이나 가방을 사주며 격려했고, A씨 격려로 10년 뒤 교사가 되는 제자들도 생겨났다. 교사로서는 받기 어렵다는 모범공무원 표창도 받는 등 교사의 본분을 지켜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자신의 학급에서 싸우던 학생들을 말린 일로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아이들을 진정시키려 책상을 복도 쪽으로 넘어뜨린 것과, 학생이 반성문에 잘못을 적지 않자 이를 찢은 것이 화근이 됐다. 또한 학부모가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32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A씨는 “20년간 괜찮은 교사로 지내왔다는 자만심 때문에 벌을 받는가 생각했다. 수시로 전화하는 건 물론 찾아와 항의하며 분노를 터트리는 학부모의 반복되는 민원에 지쳐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며 “약을 한 웅큼 삼키며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가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해 살아났다. 그러나 심장이 뛰고 환청과 환각이 들리는 공황이 찾아와 결국 병가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행정당국과 경찰은 잇따라 A씨의 행위를 ‘아동학대’로 판단했다. 광주 북구는 ‘아이가 공포와 불안을 느꼈을 수 있으므로 정서적 학대로 인정한다’고 통보했고, 광주경찰청도 아동학대 혐의 인정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북구에 재심의를 요청했으나 같은 결과를 받았다. 심의과정에서 학교 현실과 아이들의 심리가 제대로 반영됐는지 의구심이 들어 답답했다”며 “경찰 조사에서도 학급 아이들을 통한 제3자 증언이 청취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다른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제출한 사실확인서와 탄원서가 있었음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교사가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벗기 위해 혼자 법정투쟁을 감당해야 하는 현 제도에 우려를 표했다.

A씨는 “기업의 경우 법무팀이 업무 관련 소송에 대처하는데 교사는 자비로 소송비용을 부담하며 수업 시간을 쪼개 증거를 모으고 홀로 재판에 출석한다. 첫 민사재판날 진정제를 먹고 벌벌 떨며 법정에 출석했는데 교육청과 장학사들은 이 심정을 알고 있을지 원망스럽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광주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정서적 학대했다는 내용의 경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동급생이 검찰에 제출한 탄원서.2023.5.15./뉴스1
광주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정서적 학대했다는 내용의 경찰 수사가 이어지면서 동급생이 검찰에 제출한 탄원서.2023.5.15./뉴스1
검찰로 송치된 A씨를 위해 전국 교사 1800여명이 교권 붕괴 우려와 훈육 경위를 참작해 달라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유사사례를 검토한 광주지방검찰청은 ‘정서적 학대’ 판단을 위해 사건 당시 교실에 있던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의견 청취 과정도 거쳤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심의위원 다수가 A씨의 행동을 정서적 학대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면서 무혐의 처분됐다.

A씨는 “무혐의 통보 문자를 받고 지난 1년간의 과정을 떠올리며 허무한 기분이었다. 상대 학생도 일년간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을테니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일상으로 되돌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A씨가 담임에서 배제된 뒤로도 해당 학급은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세 차례나 담임이 교체됐다. 교권 문제로 인한 피해는 결국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로 이어진다고 A씨는 지적했다.

A씨는 “타 지역의 경우 아동학대 사건이 무혐의 결정이 나자 학부모를 공무집행 방해로 교육청이 고발한 사례가 있었다. 향후 아니면 말고식 아동학대 신고 재발을 막기 위해 광주교육청도 법적 대처 방안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어 “제 사건 이후 많은 선생님들이 생활지도에 소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적극 지도하다 고소 위험을 떠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며 “저 역시 다시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된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며, 또다시 고소당한다 해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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