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크 라이프사이언스社 대전 투자
이광형 KAIST 총장 역할 주효
고용창출-협력연구 파급 효과 클 듯
글로벌 바이오 회사인 독일 머크 라이프사이언스의 대전 투자 소식은 지역사회에 큰 이슈가 됐다. 대전시와 지역 혁신 주체들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한 성공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이광형 KAIST 총장의 역할이 주효했다.
올해 1월 이 총장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참석을 앞두고 초청자 명단을 살폈다. 한 사람의 이름에 눈길이 멈췄다. 마티아스 하인첼 머크 라이프사이언스 대표였다. 이 총장은 곧바로 미팅을 제안했다. 곧바로 ‘긍정적인’ 답이 왔다. KAIST는 국내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매년 다보스포럼의 공식 초청을 받는다.
이 총장이 하인첼 대표를 만나기로 한 것은 얼마 전 이장우 대전시장의 고민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머크가 공정시설 부지로 대전시와 경기 시흥시를 놓고 저울질하는데,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이 시장의 고민을 듣고 고심이 깊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350년 역사(1668년 설립)의 머크는 지난해 66개국에서 222억 유로(약 30조8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고용 창출과 협력 연구의 파급 효과가 막대할 것으로 기대됐다.
시흥시는 바이오 인력 수급이 용이한 수도권임을 부각했고 대전시는 대덕특구와 KAIST 등 연구 인프라를 강조했다. 이 시장은 지난해 11월 머크 본사를 방문해 “대전의 우수한 연구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가 머크의 글로벌 공급망 확충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1월 16일(현지 시간) 다보스포럼이 열린 스위스 다보스 알파인 리조트 미팅룸. 대전시와 머크코리아 관계자들을 미리 만나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한 이 총장이 하인첼 대표에게 부지 선택 기준이 뭐냐고 물었다. 예상대로 “인프라”라고 대답했고, 인적 자원(human resources)을 말하는 거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했다. 이 총장은 전국 이공계 박사의 3분의 1이 근무하는 대덕특구와 KAIST 등을 예로 들어 그런 기준이라면 대전이 최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작 하인첼 대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직원의 ‘마인드셋(mindset)’, 즉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인 듯했다. 창의력에 대한 책을 썼던 이 총장의 소신이기도 했다. “근무지가 거대 도시 주변에 있으면 출퇴근 걱정에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혼잡을 피해 빨리 퇴근할 궁리만 한다. 지방이면서 적정 규모인 대전이라면 그런 걱정 없이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 총장은 “마인드셋이라는 대목에서 하인첼 대표가 공감하는 눈빛이었다”고 전했다.
이 총장이 “KAIST가 연구 역량이 반도체 세계 1위, 인공지능 세계 5위권인데 바이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하자 하인첼 대표는 “우리랑 힘을 합해 바이오도 세계 5위권으로 끌어올리자”고 제안했다. KAIST를 꼭 방문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30분가량 미팅을 끝내고 헤어지려는 순간 하인첼 대표는 셀카를 찍자고 했다. 이 총장은 그의 마음이 움직인 거라고 판단했다.
3일 낭보가 전해졌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 시장, 하인첼 대표는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바이오 공정시설을 대전에 설립한다는 내용의 투자협약(MOU)에 서명했다. 이 총장은 “산업 생태계가 잘돼 있고 활력이 넘치는 외국 도시를 가면 지자체와 대학의 협력이 두드러진다. 시장이 지역 발전을 위한 ‘원팀’을 강조하면서 협력 관계가 공고해졌다. 시는 의과학 혁신, 첨단 반도체 인력 양성, 창업혁신센터 조성 등을 추진하는 KAIST를 적극 돕는다”고 말했다. 하인첼 대표는 투자협약 후 약속대로 KAIST를 찾아 연구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총장 집무실 책상의 액자에 있는 하인첼 대표의 셀카 사진을 보고 두 사람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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