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도 하지 않은 600여 명의 국가자격시험 답안지가 공공기관의 실수로 파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 응시자들에게는 재시험 기회를 주기로 했으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23일 한국산업인력공단(이하 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연서중학교에서 치러진 ‘2023년 정기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의 필답형 답안지가 채점 전 파쇄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시험장에서는 건설기계설비기사 등 61개 종목의 수험자 609명이 응시했다. 시험종료 후 공단 서울서부지사에는 18개 고사장의 답안지가 운반될 예정이었으나 연서중학교에서 치러진 시험 답안지는 담당자의 착오로 누락됐다.
답안지 인수인계 과정에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공단 본부는 한 달 뒤 채점 과정에서야 609명의 답안지가 사라진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뒤늦게 조사에 나섰지만 답안지는 이미 잔여 문제지 등 인쇄물과 함께 파쇄된 뒤였다.
609명의 응시자는 이같은 사실을 모른 채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단은 609명 전원에게 개별 연락해 사과하고, 교통비 지원 등 추가 보상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공단은 수험자의 공무원 시험 응시 등 자격 활용에 불이익이 없도록 6월 1일부터 4일까지 나흘간 추가시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시험 결과는 당초 예정된 합격자 발표일인 같은 달 9일 함께 발표할 계획이다.
이 기간 시험을 볼 수 없는 수험자는 6월 24∼25일에 치를 수 있다. 이들에 대한 합격자 발표는 같은 달 27일 이뤄진다. 응시를 희망하지 않는 수험생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전액 환불해주기로 했다.
공단은 책임자를 문책하는 등 엄중히 조치하고,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기술자격 시행 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재점검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공단을 대상으로 특별감독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수봉 공단 이사장은 “국가자격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해야 할 공공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공단이 관리를 소홀하게 운영해 시험 응시자 여러분께 피해를 준 점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태가 응시자들의 대규모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가기술자격 여부가 공무원 또는 사기업 임용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적지 않은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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