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일어난 급발진 의심사고로 인해 12살 남아가 숨진 가운데 사고 책임 소재를 가릴 민사소송 첫 재판이 열렸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민사2부는 23일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 운전자와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앞서 유족들은 자동차의 결함으로 발생한 급발진 사고였다며 지난 1월 10일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또 사고 차량 제조사인 쌍용자동차 측에 손해배상액 7억 6000만 원을 청구한 바 있다.
원고 측은 이번 사고가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였다고 처음부터 주장했다. 원고 측 변호사는 “이 사건은 급발진의 전형적인 4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웽’하는 굉음과 머플러(소음기)에서 흘러나온 액체, 도로상 타이어 자국과 흰 연기가 있고, 블랙박스 동영상에는 차량의 오작동 차량의 결함이 있음을 나타내는 운전자의 생생한 음성들이 녹음돼 있다. 약 30초 가량 가속 페달 오조작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체공학적 분석과 경험칙에 반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법원에 신청한 속도 감정(사고기록장치)과 음향 감정 등 2건의 감정을 모두 받아들였다.
원고 측은 사고 5초 전 차량의 속도가 110㎞/h인 상태에서 분당 회전수(RPM)가 5500까지 올랐으나 속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사실과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국과수의 EDR 검사 결과가 모순되는 점을 통해 EDR의 신뢰성 상실을 증명하고자 EDR 감정을 신청했다. 또 정상적인 급가속 시 엔진 소리와 이번 사고에서의 엔진 소리 간 음향 특성이 다른 점 등을 밝히고자 음향분석 감정도 신청했다.
이날 첫 재판에 참석한 자동차 제조사 변호인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고 원인 조사가 나온 뒤 상세히 반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정하면서 “이 사건은 소장이 접수된 것이 1월이고 벌써 5월이 됐고, 그 사이 기일 통지를 했지만 피고 측에서 소송에 대해 뭔가 신속하게 대응을 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 부분은 피고 측이 감수해야 하고, 원고가 신청한 증거는 다 채택한다”고 했다. 다음 기일은 오는 6월 27일 오후 2시 50분 강릉지원에서 속행할 예정이다. 공정한 판결을 위해 전문 감정인 2명이 출석해 진행한다.
이날 열린 첫 변론기일에서 재판부는 사고 당시 운전했던 A 씨(60대)씨와 A 씨의 아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했다. A 씨는 “사랑하는 손자가 죽고 저만 살아서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찢어진다”라며 오열했다. 그러면서 “누가 일부러 사고를 내 손자를 잃겠느냐. 제 과실로 사고를 냈다는 누명을 쓰고는 죄책감에 살아갈 수 없다. 재판장님께서 진실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A 씨의 아들도 호소문을 통해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겨온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자동차 급발진 사고라고 생각한다.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입증케 하는 자체가 모순된 행위이며 폭력이다. 언제까지 제조사의 이권과 횡포 앞에 국민들의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도외시돼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이어 “대한민국에서 급발진 사고는 가정파괴범이자 연쇄살인범이다. 부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주시고 대한민국은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사회라는 것을 국민 모두에게 알려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번 소송이 급발진 사고에서 승소한 첫 사례가 돼 다시는 제조사가 방관하고 묵과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의원 분들께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6일 오후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A 씨가 몰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배수로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동승자 이 모 군이 숨지고, A 씨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 A 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유가족들은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지난해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신청했다. 해당 청원은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위원회인 정무위원회로 회부돼 제조물 책임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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