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야생동물협회) 최인봉 단장(75)은 최근 동아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엽사가 경찰관서에서 정상 절차를 밟고 엽총을 반출했음에도 이를 파악 못 한 다른 경찰관서에서 되레 엽사에게 총기 사용 과정을 문제 삼으며 ‘딴죽’을 건다고 했다. 엽사 총기 사용 현황이 경찰 내부에서 공유되지 않고 있단 뜻이다. 최 단장과 6명의 소속 엽사는 멧돼지를 잡는 부산시 유해조수기동포획단에 등록돼 있다.
최 단장과 경찰의 통화 녹취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되짚으면 이렇다. 13일 오후 8시경 A 엽사는 부산 사하구 승학산에서 멧돼지를 발견한 후 엽총을 발사했다. 총성이 울리자 사하경찰서 한 지구대는 최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출동 엽사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을 물었다. 최 단장의 답변에도 지구대는 “우리 상황실에선 엽총 출고를 안 했다고 한다. 허가를 받은 게 맞냐”고 재차 캐물었다. 최 단장은 “기장군에 사는 엽사가 근처 지구대에서 엽총을 출고했다.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지구대는 “왜 이곳에 오며 우리에게 연락을 안 했냐”고 다그쳤다.
유해조수포획단의 활동 지침에는 엽사가 포획 예정지역의 지구대마다 전화를 걸어 활동 계획을 알릴 의무가 없다. 엽사는 지구대에서 엽총을 수령하면서 포획 예정 장소 등을 밝히면 되고, 수령 후 24시간 내 반납하면 된다.
A 엽사는 이날 기장서의 지구대에서 승학산 출동 계획을 알렸다. 하지만 부산경찰청과 15개 경찰관서 및 관할 지자체에는 해당 내용이 공유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 단장은 며칠 동안 총기 출고 과정 등을 묻는 경찰의 연락에 시달렸다고 한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의 총포 안전관리 시스템을 통해서는 엽총을 누가 언제 어디서 출고하고 반납했는지 등의 정보만 파악할 수 있다. 실시간 엽총의 위치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엽사의 출동 지역 등을 사전에 파악해야 했던 경찰이 애꿎은 엽사만 괴롭힌 셈이다.
앞으로 부산 엽사의 포획 활동 빈도는 더 늘 예정이다. 최대한 많은 멧돼지를 포획해야 할 임무가 이들에게 주어져서다. 멧돼지 밀집도를 낮춰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까닭이다. 2019년 가을 경기 지역에서 발생한 ASF의 확산 범위는 현재 경북까지다. 부산·울산·경남에서 ASF 남하를 막지 못하면 양돈 농가의 피해는 막심해진다. 2020년 263마리였던 부산의 멧돼지 포획 수는 지난해 563마리로 배 넘게 늘었다. 올해 현재까지만 260마리가 넘게 잡혔다. 부산 엽사들은 “부산은 다른 지자체보다 포획 보상금이 적다. 경찰이 딴죽을 걸면 포획 활동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출고된 엽총의 위치 파악이 되지 않는 점은 시민 안전에도 우려를 낳는다. 혹시나 모를 엽총 오인 사격과 그에 따른 응급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 지난해에만 엽사의 오인 사격으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 단장이 겪은 일이 이례적인 해프닝이라고 하더라도 경찰이 엽사의 구술에 기대어 엽총 관리에 나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을 활용해 엽사의 총기 출고 상태와 실시간 위치를 알려주는 ‘엽사 출동 확인 시스템’(가칭) 개발이 시급해 보인다. 급한 대로 엽사와 경찰 및 지자체의 총포 담당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대화방이라도 운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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