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1조 저출산 예산 부풀려져
9조는 ‘줬다 돌려받는’ 주택 융자
엉뚱한 사업 ‘저출산’ 붙여 예산 따내
실제론 OECD 70%… “착시 걷어야”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지난해 저출산 대응 예산 총 51조216억 원을 분석했더니, 실제 국민들이 지원받는 금액보다 부풀려져 있거나 저출산과 관련이 없는 정책의 예산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저고위는 저출산 대응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내실 없이 집행돼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저출산 정책의 비용과 효과를 따지는 검증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 저출산 정책 이름 붙이면 예산 따기 쉬워
저고위에 따르면 지난해 저출산 대응 예산(총 51조216억 원) 중 가장 큰 비중(46%)을 차지하는 지원 분야는 ‘주거’(23조4012억 원)였다. 주거 문제가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꼭 필요한 지원인 건 맞지만, 문제는 주거 예산의 약 40%(9조5300억 원)는 ‘주택 구입 및 전세 자금 융자’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주택도시기금에서 청년 및 신혼부부에게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주택 구입이나 전세 자금을 대출해 준다. 빌려주고 돌려받는 기금 자체가 저출산 예산으로 잡혀 있다 보니 실제보다 예산을 많이 투입한 듯한 ‘착시효과’가 발생한다. 정부 관계자는 “국민들이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정부 대출 상품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혜택만큼만 실제 저출산 예산으로 봐야 하는데, 지금은 이보다 부풀려지고 있어 오히려 획기적인 정책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교 시설을 현대화하는 ‘그린 스마트 스쿨 조성’에 쓰이는 1조8000억 원처럼 저출산 대응과 거리가 먼 사업도 여럿 포함돼 있다. △고교 학점제 도입 기반 조성(427억 원) △중소기업 원격근무 활성화(410억 원)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150억 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24억 원)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각 정부 부처에서 일단 ‘저출산 정책’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상대적으로 예산을 배정받기 수월하다고 보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전했다.
● “저출산 예산 ‘착시효과’ 걷어낼 것”
저고위가 밝힌 2006∼2021년 저출산 대응에 투입된 예산은 280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기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13명에서 0.81명으로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0.78명으로 더 떨어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저출산 예산’이라는 개념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저출산 대응에 투입되는 재정의 규모를 따질 때는 아동에 대한 현금성 지원, 보육 서비스 등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 지출’이라는 지표를 쓴다. 이 지표가 2019년 기준 한국은 1.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5%)의 약 70% 수준에 그친다.
이에 따라 저고위는 연내에 실제보다 부풀려진 저출산 예산과 효과적인 정책이 무엇이었는지 검증해 저출산 정책을 재구성할 예정이다. 내실 없이 부풀려진 예산이 국민들로 하여금 ‘저출산 문제 해결에 몇백조 원을 쏟아부어도 무용지물이다’라는 냉소를 불러 정책에 관한 관심과 추진 동력, 체감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은 저출산 대응에 돈을 제대로 쓰지도 않고 쓴 척하는 셈”이라며 “저출산 예산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실제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예산이 무엇인지 분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