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100번의 신고는 살려달라는 외침이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4일 12시 00분


[3회] 경찰 권지혜 씨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죽고 싶다’고 말함. ‘이렇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봄. 아무 말 없이 그냥 끊음.

지난해 초여름의 어느 날 새벽. 경기 부천소사경찰서 범박지구대 권지혜 경위(45)가 40대 A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하며 확인한 신고 내역이다.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려도 끝나지 않던 A 씨의 신고 내역은 총 100여 건에 달했다. 내용은 언제나 비슷했다. 이날도 A 씨는 늘 그랬던 것처럼, 죽고 싶다며 112에 전화를 걸었다.

권 씨가 A 씨의 집에 도착했을 때 A 씨 가족들은 아무도 밖으로 나와보지 않았다. 반복되는 경찰 신고와 출동은 이 가족의 일상이 된 듯했다.

권 씨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지금 많이 외롭구나. 죽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너무 살고 싶고 누구라도 말할 상대가 필요해서 이런 식으로 SOS 신호를 보낸 것 아닐까.’

‘무슨 일이 있으셨느냐’라는 권 씨의 질문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긴 대화가 시작됐다. 권 씨는 A 씨의 말을 차분히 들은 뒤 운을 뗐다. ‘자꾸 죽는다고 하면 안 된다’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나도 한때는 잠이 들면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그래서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너무 괴롭다’는 말만 반복하던 A 씨가 조금씩 속내를 털어놨다. A 씨가 진정됐을 때 권 씨는 다음 날 A 씨가 근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처를 한 뒤 현장에서 나왔다.

권 씨는 자살 예방 교육 강사 자격이 있는 경찰이다. 권 씨처럼 일정한 교육을 수료하고 자살할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정신건강 전문가 등에게 연계하는 이들을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Gate keeper)’라고 한다. 특히 지구대나 파출소 경찰은 현장에서 자살 시도자를 가장 먼저 만나는 만큼 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19일 부천에서 자살 시도자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23년 차 경찰, 권 씨를 만났다.

권지헤 씨가  부천소사경찰서 민원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경찰서를 찾은 한 청각장애인의 민원을 상담하고 있는 모습. 권지혜 씨 제공.
권지헤 씨가 부천소사경찰서 민원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경찰서를 찾은 한 청각장애인의 민원을 상담하고 있는 모습. 권지혜 씨 제공.
권 씨는 2021년 경찰을 대상으로 하는 자살 예방 교육 강사 연수를 다녀왔다. 이 연수에서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 교육을 받았다. 2018년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개발한 것으로, 자살을 암시하는 신호를 감지해 그 이유를 듣고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누는 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권 씨가 긴 시간 A 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에게 공감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이때 받은 교육 덕분이었다.

워킹맘인 권 씨에게는 한때 일도 가정도 뜻대로 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잠시 휴직했다가 복직한 뒤, 직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두 아이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자 돌봄 부담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권 씨는 아무리 피곤해도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불면은 점점 더 깊어졌고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다.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직장 동료들이 나약한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웠다. 그 사이 권 씨를 짓누르는 우울의 무게는 커져만 갔다.

차라리 아침에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자 권 씨는 용기를 내 상담센터와 병원을 찾았다. 물론 쉽지 않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유난히 마음이 복잡했다. 처음 정신건강의학과 알약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담과 약의 도움으로 권 씨의 마음은 다시 단단해져 갔다. 자꾸만 인생을 잘못 산 것 같고 안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정말로 매번 선생님에게 좋지 않은 일만 있었나요?’라는 상담사의 질문을 받으면 자신의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약의 도움으로 감정 기복이 줄었고 조금씩 마음도 편안해졌다.

권지혜 씨가 자신의 글이 담긴 책을 들고 웃고 있다. 권 씨와 같은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들의 경험 수기가 담긴 책이다.
권지혜 씨가 자신의 글이 담긴 책을 들고 웃고 있다. 권 씨와 같은 자살 예방 게이트키퍼들의 경험 수기가 담긴 책이다.
마음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자살 예방 교육도 받은 뒤 권 씨에게는 여러 변화가 생겼다. 먼저 자살과 정신건강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자살이 개인의 문제일 뿐이고 나약함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 받는다는 선입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고통을 먼저 헤아릴 수 있게 됐다. 권 씨에게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은 더 이상 께름칙한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다시 일으킬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일터에서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자신처럼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찰 동료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 동료들에게는 ‘많이 힘들면 마음동행센터에 가보라’고 넌지시 연락처를 알려주기도 했다. 마음동행센터는 근무 중 트라우마 등 어려움을 겪는 경찰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경찰 전용 심리상담센터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서 이제는 주변을 살피는 권 씨. 그는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저희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부르던 노래가 있어요. ‘모두 다 꽃이야’라는 동요인데, 가사가 이래요.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노래를 읊어주던 권 씨가 다시 말했다.

“지금 아주 괴로워도 스스로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장미가 활짝 피어 있지만, 국화가 가을에 핀다고 해서 꽃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늦게 피는 꽃도 다 꽃이니까요.”

자살 예방 Q&A
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

Q.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자주 하는 말이 있을까요? 어떤 말을 할 때 위험하다고 보면 되는지 궁금합니다.

A. 네, 자살이나 살인, 죽음에 대한 말과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자기비하적인 말을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주변인이 사후세계를 동경하는 말을 하거나 자살하는 방법에 대해서 질문할 때도 꼭 관심을 가져주세요.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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