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의 열기로 가득 찬 이화여대 중간고사 기간. 학교 곳곳이 총장 특별 간식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지나가는 학생들 손에는 하나씩 ‘이화 쿠키’가 들려있다. 동그란 모양의 달콤한 향기가 나는 이 쿠키는 ‘이수매니지먼트’의 발달 장애인 직원들이 직접 만든 간식. 이화여대 박물관 바로 뒤 알프스 관에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작업실을 직접 들여다봤다.
배꽃처럼 하얗게 꾸며진 사무실, 그 옆에는 고소한 쿠키와 머핀 냄새로 가득 찬 작업장이 있다. 싱그러운 초록빛의 작업복을 입고 구슬땀을 흘리며 하나씩 정성스레 빵을 만드는 ‘이수매니지먼트’의 직원들. 그리고 이를 그 누구보다 뿌듯하게 바라보며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통합사회’를 꿈꾸는 박애영 이수매니지먼트 대표다.
‘이수매니지먼트’는 한국 최초의 사립 여성 교육기관, ‘이화학당’의 자회사다. 이름 속 ‘이수’는 배꽃(梨)을 의미한다. 이수매니지먼트는 한국 여성 교육에 일찍이 뜻을 품은 김활란(1899~1970) 박사가 만든 최초의 이화학당 사업장인 ‘이수화학(전(前) 이수화학 공업)’ 설립 정신을 이어받았다. 여성들에게 배움과 발전의 기회를 줬던 ‘이화’의 이념도 담았다.
박 대표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화가 1886년(고종 23) 조선 여성들에게 교육 기회를 열어준 것처럼, 사회와 단절된 여성 발달 장애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하는 여성 발달 장애인이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학교라는 울타리 내에 있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도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여성 발달 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직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의 목표 지점은 ‘보호소’가 아닌 ‘직장’이었다. 여성 발달 장애인들이 다른 회사와 같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수매니지먼트만의 문화 꾸려 나가기에 힘을 썼다. 사무실 곳곳에는 ‘직장인으로서 예절을 지킵니다’, ‘고객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드리도록 최선을 다합니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직장 예절 안내문도 붙어있다. 박 대표는 “아무래도 (직장 문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달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고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누군가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직장 생활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이수매니지먼트에서는 아침마다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바로 ‘감정 점검하기’. 박 대표는 “아침에 우리 사원들이 종종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꼭 매니저님(비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다 같이 조회를 하며 자신의 감정, 신체 컨디션을 챙기는 시간을 갖는다”며 “직원들이 순간순간 컨디션을 신경 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매니지먼트의 채용 절차는 다른 일반 회사와 다르지 않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홈페이지에 채용 공고를 올린다. 1차는 서류를, 2차에는 면접을 본다. 3차는 기능 테스트. 손기능이 어떤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시험한다. 최종 합격이 되고 나면 일주일 실습 기간,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 정규직이 된다.
팀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제과·제빵과 병원 사무 업무다. 제과·제빵팀 직원들은 아침 4시간 팀, 저녁 4시간 팀, 풀 타임 팀으로 나눠 업무를 진행한다. 병원에 출근하는 직원은 자재를 옮기는 등의 보조 업무, 행정을 관리하는 사무직으로 근무한다. 이처럼 다양한 업무를 직원들이 잘 이해하고, 각자 능력에 맞게 숙련할 수 있도록 이수매니지먼트는 각 업무를 4~5단계로 세분화했다. 효율성에 집중한 것이 아니다. 발달 장애인 직원들이 더 쉽게 업무를 이해하고 직장에서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단계를 나눈 것이다.
이수매니지먼트의 한 직원은 직장 생활이 “달콤하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춘천에서 매일 출근하는 제과제빵 직원이 있다”며 “최근 정규직 전환이 되셔서 ‘기분이 어떠시냐?’고 물으니 ‘너무나 달콤하다’고 답하시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이 일을 함으로써 사회와 연결되는 것에 큰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답하더라”며 “스스로 이곳에서의 직장 생활이 ‘달콤하다’고 말해주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매일 아침 ’아 출근하기 싫다’ 마음을 품었던 나를 반성하게 됐다”고도 밝혔다.
또 다른 직원은 이곳에서 꼭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박 대표는 “처음 면접을 볼 때부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직원이 있다”며 “질문을 해도 답을 안 하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제과를 배우는 것이 너무 재밌고 즐겁다’고 말을 먼저 해주셨다”고 보람을 전했다. 입도 마음도 꽁꽁 닫혀있었던 사원은 이제 밝은 표정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먼저 말을 건다고 한다. 이 외에도 박 대표는 “장애 사원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모습을 볼 때, 또 소속감을 느낀다고 말해줄 때 참 뿌듯하다”며 “특히 여성 사원들은 만나서 일주일만 되면 끼리끼리 모여 대화도 하고 즐겁게 일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분들이 계속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이 모든 것이 주위의 자발적인 도움 덕분이라고 말한다. 박 대표는 “사회 곳곳에 있는 이화의 모든 기관이 이수매니지먼트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며 “유치원, 대학 특수교육과, 의료원까지 한마음이 되어 발달 장애인의 표준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처음으로 만든 고소한 버터 쿠키의 맛, 그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이번 달까지 50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박 대표. “장애인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통합사회’를 꿈꾸고 있다”고 말하며 “일부 서양 국가와 달리, 한국에서는 발달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저는 이것을 뒤집고, 발달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작은 사회로도 볼 수 있는 ‘이화’에서 우리 장애 사원들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기대하면서 날마다 다짐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대표는 이화여대의 각 건물 내 매점에서 이수매니지먼트 쿠키, 머핀 등을 판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특수교육과 학생들과 협업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점점 사업을 확장하면서, 우리 장애 사원들이 더 넓은 사회 경험을 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소속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꿈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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