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24일 박지원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재임 당시 자신의 측근들을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전략연)에 부당하게 채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서 전 원장은 인사규칙을 바꾸며 측근 채용에 개입한 혐의를, 박 전 원장은 연구 경력이 전무한 측근을 고위 연구직에 부정하게 채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이뤄졌던 인사와 관련해 자체 감사를 실시하던 중 두 전직 국정원장의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 혐의를 포착하고 올 초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인사규칙 바꾸고, 자격 없는 측근 채용”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박 전 원장과 서 전 원장의 자택 및 국정원 비서실장실, 기획조정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다만 국정원장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찰 관계자는 “박 전 원장과 서 전 원장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했다”며 “국정원은 내부 보안 규정 때문에 자발적 자료 제출에 한계가 있어 동의하에 채용 관련 서류 등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2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조모 씨를 전략연 실장직에 채용한 혐의를 받는다. 조 씨는 친문(친문재인) 성향 단체인 한국미래발전연구원에서 기획팀장을 지내고 노무현재단 등에서 활동한 인사로 외교안보나 정보 분야 공직 경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서 전 원장이 국정원 간부들이 주로 임명됐던 전략연 고위직에 조 씨를 채용하기 위해 내부 인사규칙을 변경하라고 지시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한다. 조 씨는 전략연 부원장까지 오르며 5년간 일하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전략연을 떠났다.
조 씨는 전략연 부원장 재임 중 심야에 여성을 불러들여 사무실에서 술판을 벌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찰은 조 씨가 2020년 10월∼2021년 12월 임대 목적의 전략연 소유 사무실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등 전략연에 10억 원 이상의 손해를 끼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조 씨의 횡령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은 23일 기각됐다.
전략연 관계자는 “조 씨가 연구위원들의 초과근무수당이나 연구용역에 따른 간접비용 등을 전용했다는 의혹도 있다”며 “전략연 원장이 해외 출장을 갈 때 조 씨가 출처가 불분명한 현금을 수행 연구원에게 ‘보좌할 때 쓰라’며 건넸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8월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이었던 측근 강모 씨와 박모 씨를 서류심사와 면접 등 정상적 채용 절차 없이 각각 수석연구위원, 책임연구위원으로 채용한 혐의를 받는다. 박사급 학위자들이 최소 10∼15년의 연구 경력을 가져야 채용되는 고위 연구직이지만 두 사람 모두 박사 학위가 없고 외교안보 경력도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 전 원장 측은 “(측근들은) 박사 학위 등이 필요 없는 일반 연구직에 적법한 채용 절차를 밟아 입사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 전 원장 측 변호인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 국정원 싱크탱크 전략연, 외부 감시는 미흡
전략연은 외교안보 분야를 연구, 분석하며 전략 및 정책 개발을 담당하는 국정원의 싱크탱크다.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직제상 산하 기관은 아니지만 자문 역할을 수행하며 국정원으로부터 운영 자금 일부를 지원받는다.
전략연은 특성상 보안을 강조하다 보니 외부 감시가 미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국정원 입김에 취약하다 보니 이번 같은 부정 채용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전략연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인사 청탁이 빈번하게 들어오고 ‘낙하산의 장’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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