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일부터 시작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앞두고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만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에게 야간·휴일 비대면 초진을 허용할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초진 허용에 반대하는 가운데 이대로 진행되면 어린 환자들과 부모의 불편이 가중되고 ‘소아청소년과 대란’도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3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시범사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 소아청소년 야간·휴일 비대면 초진 10만 명 이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국내에선 2020년 2월 24일부터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다. 현재는 초진과 재진 구분 없이 허용 중이지만 다음 달 1일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경계’ 단계로 내려가면 비대면 진료는 법적 근거를 잃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입법 공백을 막고자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 형태로 전환해 이달 17일 사업의 범위를 정했다. 원칙적으로 재진만 허용하되, 장기요양 등급이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나 장애인 등 외출이 어려운 환자 등에 한해서는 초진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때 쟁점이 소아청소년의 야간·휴일 초진 허용 여부였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국내에서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야간과 휴일에 이뤄진 초진은 10만 건에 달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월 24일부터 지난해 말까지 소아청소년 대상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는 총 67만8809건 이뤄졌다. 이 중 10만768건(14.8%)이 초진이었고, 그중 9만67건은 작년에 이뤄졌다. 하루 246건꼴이다. 해당 환자들은 코로나19와 기관지염, 비인두염(감기), 알레르기비염 등으로 진료를 받았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당초 17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 방안 발표에서 소아청소년 대상 야간·휴일 비대면 진료 초진을 허용할 방침이었지만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보류했다.
● “비대면 막히면 응급실 과밀화 심화” 우려도
의료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안전성과 법적 책임 때문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소아는 고열이나 복통 등 증상 발현 후 급격히 악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환자를 만나서 살펴보는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비대면 진료 때 ‘응급실 안 가도 된다’고 했다가 만에 하나 상태가 악화하면 의료진이 과도한 법적 책임을 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24시간 대면 진료가 가능한 소아 응급실을 단기간에 늘릴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비대면 초진마저 막으면 오히려 응급실 과밀화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증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리면 중증 환자 치료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때 비대면 진료를 통해서 일종의 ‘교통 정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한밤에 아이가 열이 날 때 최소한 ‘응급실에 가야 하는지’ 정도는 비대면 진료를 통해 상담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대안을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초진을 통해 ‘처방’을 하는 건 반대하지만 ‘상담’만 하는 것은 응급실 과밀화를 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효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야간·휴일 비대면 초진이 허용되지 않으면 ‘소청과 대란’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현재 소청과 의사, 의원 부족 때문에 평일에도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병원에서 진료 대기줄을 길게 서야 하는 실정이다. 비대면 초진이 막히면 한밤중이나 주말에 아이가 아플 때마다 응급실에 가거나 전국에 37개뿐인 달빛어린이병원을 찾아가야 한다. 이 의원은 “‘소청과 폐과’를 선언할 정도로 소아진료 체계가 붕괴된 상황인 만큼 ‘야간·휴일 비대면 초진’이라는 선택지마저 원천 봉쇄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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