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잠시 독방에서 지냈는데도 이렇게 힘드네요. 아들은 지금 방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까요.” 10년 넘게 방 밖에 거의 나오지 않는 이른바 ‘은둔형 외톨이’ 아들을 둔 임혜숙(가명·50) 씨는 28일 ‘고립 청(소)년 부모교육’ 1기를 마친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임 씨의 아들은 학창 시절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잦은 이사로 친구를 사귀지 못하자 고등학교부터 등교를 거부하고 방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임 씨는 “방 밖으로 거의 안 나오는 아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돌이켰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임 씨의 아들과 같이 일명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리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실태 파악에 나서고 있다. 올 1월 서울시는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 전국 만 19~39세 청년 중 약 61만 명이 고립·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은둔 청소년을 ‘위기청소년 특별지원’ 대상에 포함시켰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랑의열매와 청년재단,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올 3월 부모교육을 시작했다. “부모가 바로 서야 자녀가 회복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김현일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대표(58)는 “은둔 생활에서 막 벗어난 청년들이 재고립에 빠지는 사례를 보면서 문제는 가정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3개월 동안 매주 수업을 들으며 자녀와의 소통 기술 등을 배운 부모들은 마지막 일정으로 26일부터 강원 홍천군에서 2박 3일 동안 진행된 ‘치유캠프’에 참여했다. 잠시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현장에 동아일보 기자가 동행해봤다.
부모들은 캠프 첫날부터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독방으로 들어갔다. 1평(약 3.3㎡) 남짓한 방에는 화장실과 세면대, 작은 책상만 있었다. 오후 11시~오전 10시 독방에 갇힌 채 배식구를 통해 식사를 받았고 낮에는 명상, 나눔 등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캠프 마지막날 밤이 되자 부모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자신과 자녀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또같이. 무너지지 않으며 돕고 싶어. 나는 엄마니까.” 15년째 세상과 단절된 채 살고 있는 아들을 둔 이영서(가명·59) 씨가 편지 낭독을 마치자 주변에 앉은 부모들이 이 씨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했다.
한 부모가 “막 은둔 상태로 들어가는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라고 질문하자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부모들이 솔직하게 경험을 공유하며 진심 어린 충고를 전했다.
팬데믹 이후 1년 넘게 학교에 안 나가는 중학생 딸을 둔 정혜영(가명·52) 씨는 “맞벌이로 일하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딸의 고민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며 “비행기가 추락할 때 부모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쓰는 것처럼 내가 중심을 지켜야 자녀가 산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돌아가면서 편지를 읽은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적은 종이를 모닥불에 태웠다.
캠프를 마친 부모들은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모임도 만들었다. 모임 대표를 맡은 임형식(가명·56) 씨는 “은둔 자녀를 둔 부모끼리 서로 격려하고 자녀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자녀의 고립이 부모의 고립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아 커뮤니티 구성을 장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고립 청(소)년 부모교육’ 2기는 8월에 진행될 예정이다. 사랑의열매와 청년재단이 공동으로 자금을 출자해 반기마다 교육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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