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잘하면 약(藥), 잘못하면 독(毒)[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30일 13시 57분


동아일보 사회부에는 20여 명의 전국팀 기자들이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뛰고 있습니다. 전국팀 전용칼럼 <동서남북>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깊이있는 시각을 전달해온 대표 컨텐츠 입니다. 이제 좁은 지면을 벗어나 더 자주, 자유롭게 생생한 지역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디지털 동서남북>으로 확장해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 등 뉴스의 이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축제의 계절인 5월이 막바지다. 전국이 축제로 들썩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동시에 멈췄던 축제가 4년 만에 재개되면서 전국이 축제 물결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파악한 올해 전국의 축제는 1129개. 광역단체별로는 경남이 141개로 가장 많고, 경기 124개, 강원 117개, 충남 100개, 전남 99개, 전북 87개, 경북 84개, 제주 43개, 충북 34개 순이다. 특별· 광역시별로는 서울 82개, 부산 54개, 인천 41개, 대구 38개, 울산 31개, 대전 18개, 광주 14개, 세종 2개 순이다. 여기에 크고 작은 행사까지 합치면 1만5000여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축제 공화국’, ‘행사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축제는 봄과 가을에 집중돼 있다. 그중에서도 산야의 꽃이 만발하고 바다 생선이 알을 품는 행사의 계절 5월에 가장 많이 몰려있다.

축제는 흔히 문화예술, 전통역사, 생태자연, 특산물, 기타(주민화합) 등으로 분류된다. 이중 경쟁력 있는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별도로 ‘문화관광축제’라는 이름으로 예산 및 컨설팅, 홍보 등을 지원한다.

축제는 또 돈이 많이 들어간다. 올해 1129개 축제에 쓰이는 예산은 무려 9045억8800만 원. 국비 지원(131억7000만 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공재원이 투입된다. 참가자 자기 부담이 높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민간 주도 축제가 많은 다른 국가와는 대조적이다.

14일 끝난 대전 유성온천문화축제. 물총게임 이외 온천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경영적 측면에서 보면 축제는 대부분 적자다.

물론 흑자를 내는 축제가 성공한 축제요, 적자 축제를 실패한 축제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축제 개최로 인해 당장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지역 잠재력 발견과 브랜드 향상, 경제 외적 유발 효과, 주민화합 성과 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기자가 국내에서 목격한 상당수 축제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 있는 축제’로 평가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과거에 해왔으니 한다는 ‘연례적 축제’, 외지 관광객보다는 주민화합에만 초점을 맞춘 ‘주민화합형 축제’, 그리고 자치단체장 얼굴이나 치적 알리기에 급급한 ‘홍보성 축제’ 등이 축제의 부정적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4일 끝난 대전 유성온천문화축제(5.12~14). 봄꽃전시회와 동시에 열려 많은 인파가 찾았지만 정작 축제 콘텐츠이자 본질인 ‘온천’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온천 수신제, 온천수를 이용한 물 스프레쉬(물총게임) 프로그램 이외 연예인 공연, 통상적 체험 부스 운영 등 어느 축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뿐이었다. 온천수로 삶은 달걀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온천관광특구에 맞는 숙박이나 음식점 정보 등 연계 및 체류 관광을 위한 정보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장을 둘러본 충청권 한 대학 관광과 교수는 “차라리 ‘온천’라는 글자를 빼야 한다”며 씁쓸해했다. 외지인 방문 비율도 한 자릿수에 머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지난달 충남 서천에서 열린 동백꽃 주꾸미 축제는 더욱 가관이었다.

알이 꽉 찬 제철 주꾸미를 맛보려는 관광객이 줄을 이었으나 편의시설, 안내문 등 방문객을 위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주차하거나 차를 빼는 데 에만 한 시간 이상 소요됐다. 축제장의 주요 공간은 외지 상품 판매 업체에 임대한 나머지 정작 축제 주인공인 주꾸미는 뒷전이었다. 일부 방문객은 “다시 서천을 찾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콘텐츠도 살리지 못했고, 운영조직도 미숙하고 지역주민의 참여도 부족했다. 축제 개최로 인해 지역 이미지만 추락시킨 사례다.

전북 고창 청보리축제. 20만 평 평원에 심어진 청보리가 관광객들의 눈과 귀 등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물론 모든 축제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4년만 에 재개된 전북 고창 청보리 축제는 2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평원에 진녹색 보리가 환상적인 경관을 연출했다. 방문객들은 보리밭에서 누구나 촬영자가 되고 누구나 모델이 되면서 기뻐했다. 현지 농민들은 보리 떡, 보리밥과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제품을 적절한 가격에 판매하며 방문객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했다.

14일 끝난 경남 합천 황매산 철쭉제 역시 해발 700m~1100m 사이 황매 평원을 뒤덮은 산철쭉 장관으로 방문객들을 매료시켰다. 축제장 입구에서 주최 측의 체계적인 실시간 교통정보 제공, 주차 관리 등….

호평받는 축제와 그렇지 않은 축제는 특징이 있다. 축제의 주제, 즉 축제 콘텐츠에 충실하느냐, 또 그 콘텐츠를 얼마만큼 차별화했느냐가 중요하다. 주민들의 참여 정도나 축제 운영조직의 존재 여부 및 능력, 그리고 축제 장소의 공간 적절성도 평가 기준이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축제장 안전관리에 대한 요구도 높아가고 있다.

4년만에 재개된 경남 합천 황매산철쭉제. 외지인의 방문이 높은 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하지만 기자가 둘러본 이들 축제 중 유성온천축제와 서천 주꾸미 축제는 본질인 온천과 특산물이라는 콘텐츠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차별화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작 다른 축제와 차별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외면한 것이다.

외지 관광객들의 체류와 연계 관광을 위한 전략도 부족해 결국 ‘지속 발전 가능한 축제’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고창 청보리 축제와 합천 철쭉제는 자연환경의 소재를 최대한 살린 데다 공연 무대 등 시설물에 투입한 예산도 그리 많지 않아 흑자 축제, 효자축제, 지속 가능한 축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성공한 축제는 충실한 콘텐츠, 차별화된 전략, 그리고 방문객 중심의 설계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보령머드축제, 진주남강유등축제, 김제지평선축제, 화천산천어축제, 함평나비축제 등 이른바 ‘지역개발형축제’가 그것이다. 전국의 상당수 지방도시가 저출산·고령화·저성장에 직면해 있다. 지방 축제, 잘하면 약(藥)이 될 수도, 잘못하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전북 고창 청보리축제 현장.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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