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1년간 서민 피해로 직결되는 ‘물가 인상 카르텔’ 사건을 엄단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파트 빌트인 가구부터 교복, 닭고기, 철강에 이르기까지 기업들이 서로 짜고 경쟁을 제한한 결과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대검찰청 반부패부(부장 신봉수 검사장)는 1일 교육·주거·식품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시장에서 중대한 불공정 담합 행위로 물가 인상을 초래해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한 담합 사범을 적발해 엄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160억 원 규모의 교복 입찰 담합 △2조 3000억 원 규모의 아파트 빌트인 가구 입찰 담합△약 14조 원 규모의 치킨·삼계탕용 닭고기 가격 담합 △7조 원 규모의 철근 조달 입찰 담합 등이 대표적 사례다.
앞서 광주지검 반부패강력수사부(부장검사 최순호)가 올 4월 공정거래법 위반, 입찰방해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한 교복판매·대리점 업자 31명이 쓴 수법을 보면 낙찰받을 학교를 사전에 미리 배분한 후 해당 학교 입찰공고가 게시되면 사전에 들러리업체를 정해 투찰가격을 공유해 투찰하는 방법을 썼다. 이들은 낙찰가격을 약 24% 높여 약 32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매년 1인당 약 6만 원 더 비싸게 교복을 구매한 것으로 추산됐다.
수사 이후엔 교복 가격 정상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담합 이전보다 현저히 낮아진 투찰률(평균 79%)로 낙찰이 이뤄지는 등 가격이 내려갔고, 교육부 및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도 나서 ‘교복가격 담합행위 근절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교복가격 담합행위로 피해를 본 학부모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 소송도 추진 중이다. 실제 담합 엄단은 가격 정상화 효과를 불러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구결과에 따르면 공공조달 부문에서 입찰 담합 근절시 20% 이상 가격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어렵게 하는 고질적인 담합 관행에도 제동이 걸렸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이정섭)는 올 4월 신축·재건축 아파트에 빌트인 가구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담합한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한샘·한샘넥서스·넵스·에넥스·넥시스 등 8개 가구업체 법인과 최양하 전 한샘 회장 등 임직원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4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24개 건설업체가 발주한 전국 아파트 신축 현장 783곳의 가구공사 입찰에 참여해 낙찰예정자와 입찰 가격 등을 합의해 써낸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담합한 입찰 규모는 약 2조3261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결과 가구업체들은 건설사의 입찰 공고가 나오면 각자 자신들이 납품할 단지를 정하고 미리 납품가도 논의했다. 순번을 정해 납품할 업체를 사전에 정하고 해당 업체가 최저가를 쓰도록 납품가를 공유했다. 업체들이 자유경쟁으로 낙찰했을 때보다 5% 정도 상향된 금액으로 낙찰가 담합을 하면서 아파트 분양가 상승에 따른 서민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이 사건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인 카르텔 형벌감면제도(리니언시)를 통해 직접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최초 사건이라는 의미도 있다.
앞으로 검찰은 ‘리니언시’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관 간 정보공유의 범위를 확대하고 상호 협조도 강화할 예정이다.
윤병준 대검 반부패1과장은 “과도한 형벌권 행사는 자제하여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적극 보장하되, 중대한 불공정행위인 담합사범에 대해서는 법률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고 엄정 대응해 시장경제 질서의 근간이 되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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