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 전체 인구의 16% 차지
신체 특성-치료법 등 성인과 달라
같은 증상이라도 소청과서 진료해야
올해 소청과 희망 의사 33명에 불과… 출생률보다 지원율 감소가 더 빨라
어린이의 건강을 책임지는 소아청소년과(소청과)가 사라진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가 앞으로 10년간 어둠의 터널을 걸을 것이란 예측도 보고됐죠. 0∼19세 소아청소년은 전체 인구의 16%(2023년 1월 기준)를 차지합니다. 소아청소년과가 없으면 내과나 다른 과에 가면 되지 않냐고요? 소청과 의사가 사라지면 왜 문제인지, 과학적인 시선에서 접근해봤습니다.
● 병원에 소청과 의사가 없다
지난해 12월 12일 가천대 길병원은 소청과 전공의 인력이 부족해 입원 진료가 어렵다며 한 달간 소아청소년 입원 진료를 중단했어요.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총 2207명 중 소청과를 희망한 의사는 33명에 불과했습니다. 매년 약 200명이 배출되던 과거와 달리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부터 줄기 시작해 최근엔 15.9%까지 감소했어요.
출산율이 낮아지니까 소청과 의사 역시 줄어도 괜찮은 건 아닐까요? 김찬 삼성서울병원 소청과 전문의는 “출생률 감소보다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 감소 속도가 훨씬 가파르다”며 “의사가 줄면 중증 질환을 앓는 소아가 적정한 진료 시기를 놓칠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소청과 교수는 “지금도 어린이 환자들이 서울로 몰리면서 대형 병원은 이미 환자를 받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상태”라며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등 정밀의료기기 검진 예약이 1년 뒤로 밀리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 소청과는 왜 꼭 필요할까
“아기는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면 잔치를 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최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청과 교수는 “인생에서 신체적으로 가장 취약한 유아기를 무사히 지났기에 유아 사망률이 높던 과거엔 이를 축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아는 어른과 생리학적, 해부학적 차이가 크고 고유의 특징이 있죠. 소아청소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몸이 커지고 근육이 생기고 심폐 기능이 좋아지는 성장뿐 아니라 신경학적, 사회적 발달을 합니다. 따라서 시기마다 꼭 발달해야 할 중요한 단계가 있고, 때마다 특징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나 증상이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하는 진료의 접근 방법부터 소아청소년과 어른은 차이가 있습니다. 김찬 전문의는 “예를 들어 100일 미만의 아이가 열이 나면 호흡기 감염, 요로 감염, 뇌수막염, 패혈증 등을 모두 감별할 수 있는 진찰과 검사를 한다”며 “이 중 하나만 걸려도 위험할 수 있는데, 아기는 어른과 달리 스스로 어디가 아픈지 잘 표현하지 못하고 보호자도 ‘그냥 밥을 안 먹는다, 열이 난다’ 정도로만 짐작해 증상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소아는 해부학적, 생리학적 차이로 작은 증상만 나타나도 어른에 비해 응급질환인 경우가 많아요. 면역체계가 미성숙하고,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열이 나면 땀을 많이 흘려 탈수가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럼 신장에서 소변을 덜 만들어야 하죠. 하지만 소아는 신장이 미숙해 오줌을 잘 농축하지 못하고, 혈액이나 몸속의 수분도 적어 탈수로 손실되는 물의 양이 상대적으로 커요.
따라서 어른보다 치명적일 수 있어요. 최 교수는 “소아는 몸무게 등에 따라 써야 하는 약의 용량도 다르고 종류도 세심히 고려해야 한다”며 “폐렴에 걸린 어른에게 많이 쓰는 퀴놀론계 항생제가 소아에겐 연골 손상을 일으키고 발육하는 치아를 착색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덧붙였죠.
● 어린이와 어른은 앓는 질병도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어른이 많이 걸리는 암은 폐암, 대장암, 유방암, 위암 등이에요. 그런데 이 암들은 소아청소년에게서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그 대신 신경모세포종, 림프종, 소아뇌종양 등이 자주 발생하지요. 소아청소년은 성인에게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특정 질병이 나타나기도 해요. 예를 들어 미숙아는 태아 시기에만 있는 태아순환구조물을 갖고 태어나 혈액 순환에 어려움을 겪는 질병을 앓기도 합니다.
김찬 전문의는 “배가 아픈 증상이 나타나면 어른은 바이러스성 장염, 소위 배탈을 생각하기 쉽지만, 신생아나 미숙아는 장 자체가 미숙해서 걸리는 ‘괴사성장염’, 조금 더 큰 영아는 ‘장중첩증’ 등을 의심해 봐야 한다”며 “소아의 특징적인 질병은 소아청소년과에 특화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혜리 서울아산병원 교수 인터뷰
―환자가 수도권 병원에 몰리면 어떤 문제가 있나요.
“저는 소아암 환아를 치료하는 의사예요. 제 환아는 지방에 갔다가 갑자기 패혈증이 왔습니다. 패혈증은 세균 감염에 의해 쇼크가 오는 질환입니다. 증상 발현 후 1, 2시간 내에 빠르게 수액과 항생제를 투여하는 응급처치가 필요해요. 그런데 소아 응급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이 환자는 도로에서 헤매야 했습니다. 소청과 의사가 줄면 위험 상황이 반복될 확률이 높아질 거예요.”
―일반 응급실에서 치료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소청과 전공의, 전문의가 없으면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소아청소년과 성인의 신체 특성과 치료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소아청소년 전문의료진이 없는 병원에서 의료사고 등을 우려해 부담스러워하는 거예요.”
―선진국은 어떤가요.
“일본은 이미 10년 전 우리와 비슷한 위기가 지나갔어요. 어린이의 건강을 국가가 모두 책임지고 지원하도록 법을 만들고 지역별로 어린이병원이 유지되도록 했어요. 우리나라는 현재 전공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병원 진료체계를 전문의 위주로 바꿔야 해요. 소청과 같은 필수 의료는 정책적으로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지원해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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