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집배원들, 쪽방촌 등 다니며 고독사 위험신호 없나 살펴
작년 7월 지자체 8곳서 시작, 4월부터 47곳으로 참여 늘어
“김지호(가명) 씨, 김지호 씨, 계신가요? 우체국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허름한 4층짜리 원룸 건물 계단. 서울 용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유인준 씨(57)는 무더위 속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낡은 철문을 향해 여러 번 외쳤다. 반응은 없었다. 문에 귀를 바싹 갖다 대고 숨을 죽여도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문을 손으로 여러 번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걸까. 아니면 안에 누군가 있는데 대답할 힘이 없는 것일까’.
유 씨는 문 틈새로 가만히 코를 갖다 댔다. 냄새를 맡기 위해서다. 그 1, 2초 동안 적막과 긴장이 흘렀다. 혹시라도 ‘낯선 악취’가 코끝에 도달한다면…. 생각하긴 싫지만 그것은 위험 신호다. 굳게 닫힌 철문 너머에서 누군가 쓸쓸하게 홀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는, 말하자면 ‘고독사’다.
이날 유 씨가 생면부지의 김 씨를 찾아다닌 건 ‘복지등기’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복지등기 우편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지역 주민 중 누군가 전기요금을 장기간 체납했거나 병원비 지출이 급증했거나 하는 위기 징후가 보이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포착하고 해당 가구에 복지등기를 발송한다. 그러면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지역 집배원이 이 등기를 들고 직접 그들을 찾아간다.
집배원 유 씨의 가방에는 구청에서 보낸 복지등기 봉투가 가득 들어 있었다. 봉투 속에는 마스크, 관절 통증용 파스 등 기본 의약품, 그리고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이 신청할 수 있는 복지서비스가 정리된 팸플릿 등이 있었다. 하지만 유 씨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물품을 전달하는 것보다도, 직접 수취인을 만나 눈으로 그들의 생사(生死)를 확인하고, 위기에 처해 있진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21년 3378명이 고독사했다. 한 해 전체 사망자 100명 중 1명꼴이다. 서울 용산구와 강원 삼척시 등 8개 지자체에서 복지등기를 시범 운영한 결과 9개월 동안 위기 가구 1100여 곳을 발견했다. 4월부터는 참여 지자체가 47곳으로 늘었다.
“인기척 없는 쪽방촌에 TV소리만 들릴때 고독사 위기 직감”
“복지등기 왔습니다” 고독사 막는 집배원들 복지등기 배달 현장 복지 안내문-기본 의약품 등 배달 연락처도 없고 주소도 불분명해
집배원 유 씨는 이날 김 씨를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째다. 유 씨가 전날 김 씨의 집 문에 붙여둔 스티커도 그대로였다. ‘우편물 도착안내서’라고 적힌 스티커에는 ‘5월 24일 13시 04분 방문하였지만 부재중인 관계로 배달 안내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다녀갔는데 스티커를 못 본 것일까, 봤는데도 떼지 않은 것일까.’ 유 씨는 동행한 동아일보 기자에게 “한 번 나올 때마다 5가구 중 1가구만 직접 만날 수 있어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 씨는 밖으로 나온 뒤 건물 1층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주인 이모 씨(45)를 불렀다. 이 씨는 이 건물의 건물주이자 부재중인 수취인 김 씨의 ‘30년 지기’다. 이 씨는 친구의 사연을 털어놨다.
김 씨는 1년 전부터 친구 이 씨의 건물에 있는 한 원룸에서 혼자 지내왔다고 한다. 몇 년 전 뇌혈관 수술을 받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가 상환에 실패해 신용 불량 상태에 빠졌다.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고 했다. 이 씨는 “친구가 평소 혈압이 200mmHg(수축기)를 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아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동네에서 슈퍼를 운영한 5년간 어렵고 외로운 분들을 많이 봤다. 그나마 유 씨 같은 집배원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와 준다니, 이웃으로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 집배원이 ‘위기가구 체크리스트’ 작성
베테랑 집배원인 유 씨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과 동자동 일대 우편 배달을 30년간 담당하고 있다. 스마트폰 지도 없이 봉투에 적힌 주소만 보고도 담당 구역 내 모든 집을 척척 찾아다닌다. 웬만한 주민들은 그와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사이다. 용산우체국 관내에선 매달 200여 통의 복지등기 우편물이 배달된다. 그중 절반 이상은 ‘쪽방촌’으로 불리는 후암동과 동자동 일대로 배달된다. 저소득층 가구가 밀집한 지역이다.
이날 유 씨는 김 씨 외에도 다른 4명에게 복지등기를 전달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만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집배원이 근무하는 낮 시간 동안 복지등기 대상자(수취인)들은 주로 무료 급식소에 가서 줄을 서 있거나, 폐지 줍기 등 경제 활동을 하느라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 씨는 다른 수취인들을 찾아다니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했고, 그들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렸고, 그들의 우편함에 우편물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운 좋게 이웃들을 마주치면 “아무개 씨 혹시 본 적 있으시냐”며 행방을 물었다.
유 씨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복지등기 수취인을 찾아 나섰다. 그가 도착한 곳은 ‘○○여인숙’이었다. 한 사람이 걷기도 비좁은 여인숙 입구를 지나자 33㎡(약 10평) 남짓한 복도에 공용 세탁실과 화장실을 둘러싼 방 5개가 보였다.
“이태우(가명) 씨 계십니까.” 유 씨가 큰 소리로 불렀다. 그의 시선은 문 옆의 우편함, 쓰레기통, 주변 집기들을 빠르게 훑었다. 복지등기 담당 집배원은 우편물을 배달할 때 수취인이 수령하지 않은 우편물이나 재활용품이 많이 쌓여 있진 않은지, 악취가 나진 않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파악한 주거환경과 생활실태를 6개 항목 ‘체크리스트’로 작성해 지자체로 보낸다. 지자체는 이를 토대로 위기 가구를 파악하고, 필요한 공공과 민간 복지서비스로 연계해 지원한다.
이번에도 유 씨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 씨는 “쪽방촌은 주소지가 하나인데, 한 층에 수십 가구씩 사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는 집주인을 통해 전달하거나 우체통에 넣어두고 근처에 올 때마다 살펴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을 마칠 때쯤 유 씨의 얼굴은 땀범벅이 돼 있었다.
● “우체국이 외로웠던 내게 손 내밀어줘”
복지등기 덕분에 어려운 상황을 빠져나온 사람들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주거급여(기초생활수급의 한 종류)를 받으며 살고 있던 이은종(가명) 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자신들에게 복지등기를 배달하러 온 집배원을 처음 만났다. 부부를 본 집배원은 체크리스트에 ‘수취인의 거동이 불편하다’고 기록을 남겼다. 다리에 장애가 있었던 것을 관찰한 것. 이윽고 집배원은 이 씨 부부에게 “어디가 편찮으시냐, 좀 어떠시냐”고 말을 걸으면서 안부를 물었고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주민센터는 이 씨에게 보행기 등 보조기구를 지원했다.
광주 북구 오치동에 혼자 살던 차윤택(가명) 씨는 실직 후 오랫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구직에 실패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지자 점점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사회적 관계도 단절됐다. 올 1월 그의 집을 방문했던 복지등기 집배원은 차 씨의 집에서 악취가 나는 것을 맡았고, 위기 징후를 포착했다. 그 후속 조치로 복지담당 공무원이 차 씨의 집을 방문했다. 차 씨는 저소득 구직자에게 생계비와 일자리를 알선하는 국민취업지원 신청을 안내받았고, 최근에는 취업에 성공해 집 밖으로 나왔다. 차 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정말 막막하고 외로워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준 우체국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에서 총 7434가구에 복지등기가 배달됐다. 지자체는 이 중 719가구가 생계급여 등 공공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도왔고, 443가구에는 생활필수품 지원 등 민간서비스를 연결해 줬다. 복지등기를 받은 가구 중 15.6%(1162가구)가 복지서비스를 지원받은 것이다. 김경일 용산우체국 집배실장(49)은 “복지서비스 연계율이 언뜻 낮아 보일 수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바는 다르다”며 “2주 동안 100가구에 복지등기를 배달했을 때 복지서비스가 절실한 위기가구 15가구가 받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복지등기 우편에는 연락처는 물론이고 정확한 주소조차 적혀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단순히 일반 우편물처럼 배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취인의 위기 징후를 살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4, 5배 더 걸린다. 김 실장은 “복지등기는 배달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일일이 대상자를 살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그래도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배달한다”고 말했다.
● 2030 젊은 ‘위기 가구’ 늘고 있어
복지등기를 배달하는 현장에서는 2030세대, 즉 젊은 청년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모습도 최근 많이 포착되고 있다. 용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심현석 씨(41)는 용산구 청파동 일대에서 복지등기 배달을 담당한다. 이 지역은 숙명여대 인근이어서 20, 30대 자취생들이 많이 산다.
지난달 24일 오후 심 씨는 복지등기 수취인으로 선정된 20대 초반 이지우(가명) 씨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복지등기 봉투를 받아 든 이 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눈으로 심 씨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우편물이냐’는 뜻이었다. 심 씨는 이 씨에게 복지등기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며 눈으로는 재빨리 집 안쪽을 살폈다. 심하게 어지럽혀져 있지는 않은지, 쓰레기가 쌓여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당황했던 이 씨도 조곤조곤 이어지는 심 씨의 설명에 조금씩 경계를 풀었다. 이 씨가 개인용디지털단말기(PDA)를 받아들고 우편물 수령 확인 사인을 하는 동안 심 씨는 “요즘 잘 지내시냐, 본가에는 자주 가시냐”라며 안부를 물었다. 수취인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지는 않은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배달을 마친 심 씨는 건물 밖으로 나온 뒤 PDA로 복지등기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복지등기를 받아 든 젊은이들은 자신이 대상자로 선정된 것 자체를 의아해하거나 “내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며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체크리스트도 복지등기 대상자가 기분 나빠 하지 않도록 배달을 마치고 나와서 작성한다.
심 씨는 “보통 위기가구는 누가 봐도 감이 온다. 집 안팎과 우체통, 재활용통 등을 먼저 살피고, 인기척이 없는데 TV가 켜져 있진 않은지 등의 위기 징후를 철저하게 체크한다”고 했다. 그는 “가장 위험한 고독사 위험 징후는 인기척 없는 주택이나 쪽방촌 같은 곳에 TV 소리가 새어나오거나 불빛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수취인이 병으로 쓰러졌거나 최악의 경우 이미 사망한 상태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에서 30대 이하 청년 219명이 고독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독사자의 6.5%에 해당한다.
복지등기 서비스를 통해 실제 청년 위기가구를 찾아낸 적도 있다. 서울 이태원의 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장재헌(가명) 씨는 지난해 10월 핼러윈 참사 이후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으며 생계가 막막해졌다. 장 씨는 구직활동을 계속했지만 일자리가 잘 구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취업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름에 잠긴 그를 본 집배원이 위기 징후를 포착해 복지등기 대상자로 선정됐고, 집배원의 도움을 받아 국가 긴급복지 생계지원 신청 및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 위기가구 발굴 ‘총력’, 우리 동네 사회복지사
정부는 지난해 8월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던 ‘수원 세 모녀’가 외롭게 세상을 등진 사건이 알려진 뒤 복지 사각지대 해소 대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단전이나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생계가 어려워진 가구를 찾기 위해 수집하는 위기 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늘렸고, 12월부터는 44종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전산망에 뜨는 수치화된 정보를 아무리 많이 수집하더라도 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집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어떤 쓰레기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등은 반드시 현장에 사람이 직접 가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복지등기 서비스를 시작한 건 이러한 ‘현장의 위기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민간 인력을 활용한 위기가구 발굴 활성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지역 주민이 이웃에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방식이다. 위기가구 중에선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럴 때는 오히려 공무원이 아닌 ‘이웃 사람’이 다가가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인천 연수구에서 7년째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하고 있는 서인숙 씨(60)는 “위기가구를 처음 방문할 때는 마음을 닫고 대화를 거부하는 분이 많은데, 실없는 담소도 나누고 전화도 드리면 차차 얼음이 녹듯 문이 열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동네에선 ‘희망텃밭 가꾸기’ 사업으로 홀몸노인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자리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민간에 일선 복지 서비스를 일부 맡기는 것은 효율성이 높은 만큼 정부의 활동비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충남 아산에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하고 있는 박충서 씨(62)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오랫동안 지역 복지 일선에서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협의체 회원들이 사비를 걷어가며 활동을 하고 있다”며 “복지 일선에서 봉사하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주민자치회처럼 식대나 교통비만 지원해도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등기 우편서비스
집배원이 단전, 단수, 체납 등에 처한 위기의심 가구를 방문해 복지정보 우편물을 전달하면서 생활 상태 등을 파악해 지방자치단체에 정보를 전달하는 서비스. 복지서비스 연계 지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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