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김재경 씨(33)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투입됐던 동부 전선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 씨는 6개월 동안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여단 3대대 소속으로 러시아군에 맞서 싸웠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4일∼이달 4일 김 씨를 대면과 전화로 3차례 인터뷰했다. 김 씨는 2010년 육군 특전사 부사관으로 입대해 군 생활을 한 후 2014년 전역했다. 김 씨는 “이후 국가정보원에서 2018년 말까지 정보관으로 일하다 2019년부터 경북 상주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과수원 일을 도왔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김 씨는 참전을 결심하고 자비로 야간 투시경 등을 사 모았다. 참전 배경에는 할아버지가 6·25전쟁 참전용사라는 점도 작용했다. 지난해 10월 폴란드로 출국해 현지에서 입대를 신청했다.
전장 투입 후에는 위기일발의 순간이 이어졌다. 올 1월에는 수색 작전을 하다 러시아군 탱크 T-90을 발견한 뒤 급히 한 폐가로 숨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포격을 맞고 건물 외벽이 부서졌다. 김 씨의 몸도 날아갔다. 그는 “머리가 땅에 부딪히며 정신을 잃었다”며 “당시 포격에 휘말렸던 팀원들 모두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러시아군 공격으로 3번 더 기절했다.
어제까지 대화하던 전우가 사망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김 씨는 “전선에 투입되고 2주 후에 룸메이트였던 폴란드 전우가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평균 2주에 한 명씩 동료들이 죽어갔는데 눈앞에서 보면서 시신조차 수습 못 한 적도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의 폭력에 노출됐던 아이들의 참혹한 피해를 지켜본 것도 악몽으로 남았다. 김 씨는 “전방에서 잠시 철수했을 때 후방에서 주민들의 치료를 도왔는데 남녀 아이들 중 상당수가 성폭력을 당한 상태였다”고 했다.
올 3월 부상 등의 이유로 귀국한 김 씨는 병원을 다니며 뇌진탕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불면증을 치료 중이다. 여행 금지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여권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달 1일 재판에도 넘겨졌다. 김 씨의 사연을 접한 법무법인 산우에서 “법률 지원을 해주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 씨는 “지금도 현지에서 전우가 사망하면 장례식 영상을 보내온다”며 “현충일을 맞아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라는 점과 지금도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참전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침략전쟁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간 거라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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