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물 전문가들 필요성에 공감
생태계 권리 등 최상의 환경보호 보장
전문가 “정교한 논리와 토론 필요”
세계적으로 자연물을 법인격(legal personhood)으로 선언하는 사례가 나오는 가운데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에 대해 법인격 지위를 부여하는 ‘생태법인’ 논의가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법인격 부여는 제도 및 법적인 근거 마련과 공감대 형성 등 적지 않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 제주에서 생태법인 공론화 시작
제주도는 1일 열린 제18회 제주포럼의 ‘생태법인 제도 공유를 통한 아시아태평양 생태평화공동체 형성’ 세션에서 제시된 생태법인 의견을 수렴해 공론화 절차를 밟는다고 6일 밝혔다. 이번 세션에서 해양생물 전문가 대부분이 생태법인 제도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생태법인은 ‘자연의 권리(rights of nature)’ 운동에서 나온 것으로 강, 호수, 산과 같은 생태계가 인간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방식으로 법적 권리를 갖는 것으로 ‘자연의 권리를 위한 국제 연대(GARN)’ 등이 주도하고 있다. 개발 프로젝트에 따른 환경 오염, 기후변화에 의한 환경 악화 등의 피해에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태계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최상의 환경 보호를 보장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이번 제주포럼을 시작으로 생태법인을 주제로 한 국제포럼, 유엔 ‘2023 국제 어머니 지구의 날’ 행사, 2028년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해양포유류학회 총회’ 등에서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을 알릴 계획이다. 강민철 제주도 특별자치제도추진단장은 “이번 제주포럼을 통해 생태법인 제도화 논의가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며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전문가 워킹그룹이 돌고래에 대한 법인격 부여 방안과 생태법인 설립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뉴질랜드 황가누이강, 인도 갠지스강 등 생태법인 지정
2017년 뉴질랜드 황가누이강이 ‘테 아와 투푸아 법(Te Awa Tupua Act)’ 제정을 거쳐 법인격을 취득했다. 법을 통해 법인격을 얻은 최초의 사례다. 마오리 원주민 1명과 정부 대표 1명이 후견인으로 임명돼 이 강을 대변한다. 마오리 원주민에게 조상으로 여겨지는 황가누이강이 소유권 분쟁과 함께 각종 개발 사업으로 황폐해지자 보호 운동을 펼친 것이다.
황가누이강에 이어 콜롬비아 아트라토강과 인도의 갠지스강, 야무나강도 법적 권리를 얻었다. 2019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클래마스강에 대해 인간과 같은 권리가 부여됐다. 2021년 캐나다 퀘벡에서는 맥파이강이 법인격을 취득했다. 이들 강은 신성시되거나 지역 주민 또는 원주민의 생활 터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는 주로 강에 대해 법인격을 부여하는데 제주에서는 해양생물인 남방큰돌고래에 주목했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폐그물이나 해양쓰레기, 해상풍력발전, 돌고래 선박관광 등에 의해 남방큰돌고래 서식지가 위협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연안 수중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현재 110∼120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9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적색목록에서 준위협종(멸종위기 직전의 상태)으로 분류했다.
남방큰돌고래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려면 우선 생활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함께 피해 상황 등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특히 한라산, 오름(작은 화산체), 곶자왈(용암 암괴에 형성된 숲) 등보다 먼저 생태법인으로 지정되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제주연구원 관계자는 “남방큰돌고래는 해양생태계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에 따라 보호를 받고 있는데 보다 상위 개념인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하고 공감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며 “선언적 의미가 아닌 법인격으로 실현되려면 정교한 논리와 함께 폭넓은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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