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닝 인기상승, 수준 높은 대회 필요[디지털 동서남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7일 14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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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남 거제도에서 산악지대와 해안가를 도는 트레일러닝(trail running)대회가 열렸다.대회 메인 종목인 100km는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코스의 난도가 높다. 참가자들은 가라산, 북병산, 앵산, 계룡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제한시간인 29시간 이내에 레이스를 마쳐야했다.

트레일러닝은 도로를 달리는 마라톤과 달리 산길, 숲길, 초원, 사막 등 자연 속에서 이뤄지는 스포츠다. 울퉁불퉁한 지형과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코스를 완주하려면 근력과 지구력이 필수적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힐(hill)러닝, 산악마라톤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지역별로 이벤트성 대회가 열렸다. 그러다가 2003년 프랑스 샤모니를 거점으로 한 몽블랑 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UTMB)가 등장한 이후 세계적인 열풍을 이끌었다. UTMB는 트레일러너들에게 ‘꿈의 무대’로 인식되고 있으며 지원자가 많다보니 참가가 쉽지 않다.

유럽 몽블랑 주변을 레이스 코스로 하는 UTMB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트레일러닝 대회로 성장하면서 트레일러닝 열풍을 선도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홍콩에서 열린 100km 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중국과 동남아시아, 대만에서도 신규 대회가 개최되는 등 아시아에서도 트레일러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2012년에는 국제트레일러닝협회(ITRA)가 출범하면서 ‘트레일러닝’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해외에서 트레일러닝은 이미 인기 스포츠로 정착한 가운데 UTMB 운영사가 종전 울트라트레일 월드투어(UTWT)를 ‘월드시리즈’로 전환해 상업·산업화에 대한 주도적인 지배력을 확대하자 이에 반발한 유럽, 미국의 일부에서는 다른 시리즈 대회를 구성하는 등 각축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 트레일러닝 명칭을 쓴 대회가 등장한 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잠시 주춤했다가 올해 다시 전국 곳곳에서 대회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에만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부산 5산종주트레일대회, TNF100km 강릉, 지리산 화대종주대회 등이 잇따라 열렸다. 도로마라톤 대회가 여전히 많지만 트레일러닝에 대한 선호도는 점차 높아지는 양상이다.

제주지역에서 열린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 선수들이 한라산 정상을 오르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트레일러닝은 자연 속을 달리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계곡 물을 건너고, 숲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산 정상에서는 사방에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몸이 지치면 걸으면서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50km, 100km 이상의 장거리 레이스에 도전해서 완주할 때는 짜릿한 성취감을 경험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산길과 숲길을 달리고, 걷다보면 부상 위험에 상시 노출된다. 장거리 레이스에서는 야간에 홀로 산길을 뛰고, 걸어야하고 기상이변 때문에 더욱 안전에 중점을 둬야한다. 대회 주최 측에서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랜턴, 물, 여벌 옷, 비상 담요, 붕대, 비상식량 등을 필수 장비로 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트레일러닝 자체가 모험을 하는 스포츠다보니 참가자 스스로가 안전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최 측은 특히 환경보호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일회용품을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레이스 코스에서 개인 쓰레기 투기를 통제한다. 일부 대회는 흙이나 자갈이 파이는 것을 막기 위해 스틱, 트레킹 폴 등으로 불리는 지팡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 트레일러닝대회인 후지산울트라트레일러닝(UTMF)에서는 휴대용 용변기를 필수 장비에 포함시킬 정도로 환경보호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올 4월 열린 일본 후지산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UTMF)에 참가한 선수들이 출발하는 모습. 이 대회는 휴대용 용변기를 지참하게 할 정도로 환경보호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트레일러닝대회 개최가 세계적으로 인기이고 국내에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대회운영, 선수육성이나 관련 산업의 확산 등에서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참가자에게 칩을 부여해 자동으로 기록을 측정하는 것이 대중화하고 있는데도 국내에서는 수기(手記)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장거리 레이스에서는 리본이나 화살표 등으로 코스를 알려주는 ‘마킹’을 제대로 하지 않아 참가자들이 코스를 이탈하는 사례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도로마라톤에 비해 착용하거나 구비해야하는 장비가 많다보니 관련 제품 생산과 판매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대부분 해외 제품을 수입해서 쓰는 실정이다.

산지(山地)가 70% 이상인 우리나라는 트레일러닝에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코스를 좀 더 다듬으면 세계 유명 대회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집 밖을 나가면 오르내릴 수 있는 언덕과 산이 즐비하다. 도로마라토너, 등산객 등이 점차 트레일러닝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아 트레일러닝 시장은 전망이 밝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회운영, 선수 육성과 더불어 참가자의 환경보호 및 안전의식, 관련 국산 제품의 글로벌화를 통한 트레일러닝의 확산을 기대해본다.

임재영 기자
임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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