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반지하 침수 대책 10개월, ‘탈출’ 주민 1%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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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는 반지하 대책]
작년 폭우로 반지하 사망 사고 뒤
정부-서울시, 임대 이주-월세 지원
“지원 받아도 보증금-임차료 부담”
서울 21만가구중 2300가구만 옮겨

물막이판 아직도 제대로 설치 안 하고, 침수 주택 10개월째 방치 지난해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구 반지하 집의 9일 모습. 빗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는 물막이판(차수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폭우 당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인근 반지하 집은 10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벽지 등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물막이판 아직도 제대로 설치 안 하고, 침수 주택 10개월째 방치 지난해 8월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관악구 반지하 집의 9일 모습. 빗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는 물막이판(차수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폭우 당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인근 반지하 집은 10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벽지 등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해 8월 폭우로 서울 관악구 동작구 일대 반지하 주민 4명이 숨진 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실제로 반지하 집을 탈출한 주민은 극히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여름 기록적 고온과 홍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반지하 주민들의 피해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동아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월세 지원 및 공공임대주택 이주 등 지난해 폭우 이후 발표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주거 상향’ 정책을 통해 반지하를 벗어난 주민은 최대 2300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내 전체 반지하 주택(약 21만 가구)의 1.1%에 불과한 수치다. 서울시가 폭우 직후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밝히며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아직 대다수 반지하 주민이 지난해와 비슷한 환경에 거주하는 것이다.

먼저 국토부와 서울시의 ‘공공·민간임대주택 이주 우선권 부여 및 보증금 무이자 대출’ 정책의 지원을 받아 반지하에서 임대주택으로 이주한 주민은 올 5월 말까지 1300가구에 그쳤다.

서울시의 ‘지상층 이주 시 월세 20만 원 지원’은 올 5월 말까지 970건 집행됐다. 지난해 8월 폭우 피해가 컸던 동작구는 312건, 관악구는 129건 지원을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혜자가 매달 월세를 지원받을 때마다 1건으로 집계되는 만큼 실제로 지원을 받은 가구는 970가구에 못 미칠 것”이라며 “장마철을 앞두고 홍보 우편물 발송 등을 통해 제도를 더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다세대주택을 매입해 창고 등으로 전환하며 반지하 주택을 줄이는 정책도 실적이 저조한 편이다. 지난해부터 올 5월 말까지 SH공사가 매입한 반지하 주택은 98채로 지난해(1000채)와 올해(3450채) 목표를 합친 것의 2% 남짓에 불과하다. LH는 지난해 폭우 이후부터 지난달 말까지 1건도 매입하지 못했다.

여전히 반지하에서 못 벗어난 주민이 대다수여서 지난해와 같은 폭우가 내릴 경우 침수 피해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여름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의 고온 현상인 엘니뇨가 발생하며 기록적 고온과 홍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7월 강수량이 평년(245.9∼308.2mm)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80%에 달했다. 8월에도 평년(225.3∼346.7mm)과 비슷하거나 많을 확률이 80%에 이른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일부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수천만 원에 이르는 지상층 임차 보증금과 매달 수십만 원씩 더 내야 하는 월세는 반지하 주민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남아있는 반지하 주민을 위한 물막이판(차수판) 설치, 신속 대피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년 침수지역 반지하 45곳중 39곳 주민 거주… “지원 턱없이 부족”


공공임대-보증금 대출 등 혜택 적어
지원 받아도 반지하 탈출 어려워
“10개월 지났지만 아직 물비린내… 하수도 정비-차수판 현실적 지원을”

“지상층으로 올라갈 돈이 충분하지 않네요. 여름이 무섭지만 반지하에 남을 수밖에 없죠.”

지난해 8월 폭우 당시 침수 피해를 당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민 이모 씨(25)는 9일 만난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당시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자 몸만 빠져나왔다. 가재도구 등이 모두 침수돼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집에선 물비린내가 난다. 이후 몇 번이나 인근 지상층 원룸으로 이사를 생각했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반지하 집 전세 계약도 연장했다. 이 씨는 “정부 지원을 받아도 반지하를 탈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당시 5분만 늦었어도 못 빠져나올 뻔했는데 올해는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 관악·동작 반지하 여전히 대부분 거주

9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지난해 폭우 피해가 컸던 서울 관악·동작구 일대 반지하 가구 45채를 조사한 결과 39채(87%)에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밝히며 각종 대책을 내놨지만 주민 대부분은 반지하를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8월 폭우 당시 일가족 사망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 반지하 주택 바로 옆 빌라 2곳에도 아직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중 1곳은 빗물을 막아주는 물막이판(차수판)도 설치되지 않은 채였다.

반지하 주택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이주 우선권을 주며 보증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고 물량이 많지 않다 보니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실정이다. 또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보증금 대출이자, 월세 등의 비용 부담이 여전하다 보니 지상층 이사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관악구 반지하 주민 김모 씨(35)는 “지금 사는 반지하 집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인데, 인근 지상층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 수준”이라며 “서울시의 20만 원 월세 지원을 받아도 매달 25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작구 반지하 주민 박모 씨(49)도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 해준다고 해서 알아봤는데 직장 및 아이들 초등학교와 거리가 너무 멀어 포기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침수 피해가 잦은 지역의 반지하 주민부터 선제적으로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보증금을 직접 지원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각자도생 나선 반지하 주민들

고물가에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저렴한 반지하 주택을 찾는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동작구의 한 부동산에서 만난 김모 씨(32)는 “지난해 침수됐던 지역이라 꺼려졌지만 비용을 고려하니 이 지역 반지하 집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악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고시생이나 외국인 근로자 등 신림동 반지하를 찾는 수요는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반지하를 못 벗어난 주민들은 장마철을 앞두고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침수를 경험한 동작구 주민 최모 씨(49)는 반지하에 사는 동네 어르신 집을 돌며 무거운 짐들을 바닥으로 내려주고 있다. 최 씨는 “집이 물에 잠기는 과정에서 대피하다 무거운 짐이 떨어져 다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온다는데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악구 반지하 주민 김모 씨(33)는 “올해 다시 침수되면 어차피 다 버릴 것 같아서 냉장고 같은 필수품을 제외하곤 가전제품과 가구를 최소화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남아 있는 반지하 주민들을 위한 대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폭우 때 물이 차는 속도를 늦추기 위한 하수도 정비와 물막이판 설치 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폭우를 대비해 임시 거처를 미리 마련하고 주민들이 신속하게 해당 공간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폭우#반지하 침수 대책#탈출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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