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기동물 보호소 90% 자격미달… “보호 아닌 학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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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반대로 그린벨트-산림 등 설치
‘불법 시설’이라 정부 지원 못 받아
보호소 폐쇄땐 안락사 시킬수밖에
“지속가능한 후원 방안 등 마련을”

8일 대전 유성구 송정동 유기동물 사설보호소 ‘시온쉼터’ 견사의 모습. 약 1평(3.3㎡) 남짓한 견사 1곳당 10~20마리의 유기견들이 생활하고 있다. 대전=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유기동물을 보호한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상 학대나 마찬가지죠.”

8일 오후 대전 유성구의 한 유기동물 사설보호소. 둘러보던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의 유영재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이 보호소에선 유기견 약 300마리를 보호 중인데 분뇨를 제때 치우지 않아 악취가 진동했고, 파리 떼가 들끓었다. 3.3㎡(약 1평)도 안 되는 견사에 10마리 이상의 유기견이 뒤엉켜 있기도 했다. 유 대표는 “털이 빠진 상태 등을 보니 개들의 영양 상태도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8일 대전 유성구 송정동 유기견 사설보호소 ‘시온쉼터’ 내 견사의 모습. 대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8일 대전 유성구 송정동 유기견 사설보호소 ‘시온쉼터’ 내 견사의 모습. 대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유기동물 보호소 90% 지원 자격 못 갖춰
8일 대전 유성구 송정동 유기견 사설보호소 ‘시온쉼터’ 전경. 견사 한쪽엔 분뇨가 흙처럼 굳어 이불 등과 함께 쌓여있다. 대전=주현우기자 woojoo@donga.com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올 4월부터 시행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기동물 보호소를 지원할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이 보호소의 경우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만들어진 ‘불법 시설’이라 정부와 지자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곳 대부분이 불법 시설이라는 등의 이유로 지원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사설 보호소 102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약 90%가 지원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실태 조사에 참여한 유 대표는 “지원 자격을 갖추지 못한 보호소 10곳 중 8곳은 토지 용도와 다르게 운영되는 불법 시설”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설 보호소 측은 주민 반대 등을 감안하면 유기동물 보호 시설을 만들 곳이 그린벨트나 농지, 산림 외에는 마땅치 않다고 주장한다. 이날 유 대표와 동아일보 기자가 찾은 보호소 역시 7년 전 개농장에서 20여 마리의 개를 구해 보호소 운영을 시작할 때 마땅한 자리가 없어 자신들이 보유한 그린벨트 토지에 시설을 지었다.

불법 시설이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 철거를 요구하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경우도 많다. 방문한 보호소 관계자는 “매년 이행강제금 1300만 원이 부과된다. 면적을 넓히면 이행강제금이 더 늘어 견사를 늘릴 수도 없다”며 “미납 이행강제금이 6000만 원까지 늘었는데 매달 들어오는 후원금으로는 운영비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8일 시온쉼터 관계자가 개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 그릇을 닦고 있다. 300마리가 넘는 개들을 홀로 돌보는 중인 그는 이날 병원에서 천식과 폐결절 진단을 받았다. 대전=주현우기자 woojoo@donga.com

불법 시설이 아니더라도 △보호 동물이 영양 결핍에 노출되거나 △보호 공간이 좁거나 △적절한 치료 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다.

● 농식품부 “용도 외 사용 허용 고민 중”
농식품부는 사설 보호소 대부분이 지원을 못 받을 경우 정책의 실효성이 낮을 수밖에 없어 고민 중이다. 현재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보호소가 포화 상태인 상황에서 사설 보호소 다수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돼 문을 닫을 경우 해당 시설에서 보호 중인 유기견은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유기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유기동물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사설 보호소 다수가 농지, 산림, 그린벨트 등에 있는 현실을 감안해 예외적으로 용도 외 사용을 허가하는 방안도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두고선 불법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대전 유성구 송정동 유기견 사설보호소 ‘시온쉼터’ 입구에 부착된 안내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지어진 시온쉼터는 ‘불법 시설’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에서 배제될 위기에 놓였다.  대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8일 대전 유성구 송정동 유기견 사설보호소 ‘시온쉼터’ 입구에 부착된 안내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지어진 시온쉼터는 ‘불법 시설’이기 때문에 정부 지원에서 배제될 위기에 놓였다. 대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외에도 유기동물 사설보호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1월 국경없는수의사회 심포지엄에서 일부 공개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설 보호소 95곳 중 52곳을 개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운영비용은 연평균 1억4052만 원이었는데 보호소 운영자가 운영비를 부담하는 비율이 평균 41%에 달했다.

조윤주 VIP동물의료센터 기업부설연구소장은 “비영리단체가 보호소를 운영하면 회계감사를 매년 받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보호소는 그렇지 않아 후원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회계감사를 지원하면 사설 보호소 운영도 투명해지고 기부금을 늘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기동물 보호소#불법 시설#정부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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