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넘는 집회 소음에 따른 시민 피해가 커지면서 각국에서 과도한 소음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민 상당수가 집회 소음으로 인한 일상생활 침해를 겪고 있어 관련 입법 보완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12일 경찰청이 지난 2020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4.6%는 ‘집회 소음이 일상생활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일반 시민의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충분하게 보호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집시법에 따르면 10분간 측정한 평균 소음이 65데시벨(주거지역 기준)을 넘거나, 최고소음 기준인 85데시벨을 1시간 동안 세 차례 이상 넘기면 규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5분간 큰 소음을 낸 후 나머지 5분 동안 소리를 줄여 평균값을 낮추거나, 1시간에 두 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내는 등 꼼수로 제재를 피하고 있다. 소음의 지속 시간, 반복적 재생, 내용 등 규제는 전무한 상황이다.
일반 시민은 물론 기업도 소음 피해를 입고 있다.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 인근에서 개인 A씨가 벌이는 시위가 대표적이다.
A씨는 자신이 일하던 판매 대리점 대표(기아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사업자)와의 불화 등으로 계약이 해지된 후 이와 무관한 기아 주식회사에 아무런 법적 근거 없는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10년째 소음을 동반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출퇴근 시간 등에 고성능 스피커를 동원해 장송곡을 틀고, 인격모독성 발언과 기업 비방을 일삼았다. 이에 법원은 A씨 표현 일부가 도를 넘었다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시위 소음에 따른 피해로 시민들이 자구책을 강구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지난해 서초구 SPC 사옥 부근 노조 시위에서 소음을 발생하자 인근 주민들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현수막을 내걸고 항의했고, 하이트진로 사옥 인근 주민들은 소음 시위 중단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해외 국가 사례를 참고해 소음 등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집회 시위에 관한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온 영국 등도 최근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며 “해외 사례를 참고해 일반 시민들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적절한 규제 도입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시는 집회 신고를 했어도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경찰과 관할 지자체로부터 1일 단위의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뉴욕 경찰 당국은 소음허가 신청 시 하루 45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해 무분별한 확성기 사용을 막고 있다. 만일 허가받지 않은 소음 기구를 사용하면 해당 기구 압수 또는 벌금 부과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관련 처벌 조항을 형법에 명기한 곳도 있다. 워싱턴D.C.에서는 ‘소음규제법’(District of Columbia Noise Control Act)에 의해 상업 지역 기준 주간 65데시벨, 야간 60데시벨을 넘는 소음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 만약 위반 행위가 계속되면 시위자는 현장에서 체포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은 대부분 지자체가 시위 현장으로부터 10m 떨어진 지점에서 85데시벨을 초과하는 소음을 폭력적 소음을 의미하는 ‘폭(暴)소음’으로 규정해 원천 금지하고, 이를 1회만 어겨도 경찰이 즉시 규제에 나선다. 위반 상태가 지속되면 강제 퇴거와 자택 구금 등 규제 강도가 더욱 높아진다.
시위 규제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오던 영국은 최근 ‘경찰, 범죄, 양형 및 법원에 관한 법률(PCSCA?Police, Crime, Sentencing and Courts Act 2022)’을 제정해 시위 소음 규제를 새로 도입했다. 시위 소음이 주변 기관의 활동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인근 시민에 중대한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이 개입할 수 있다. 위반 시 징역형과 벌금형을 동시 부과할 수 있는 등 처벌 수위도 높다.
국내에서는 현재 21대 국회에서 소음 규제를 강화하는 취지의 입법안이 9건 발의된 상태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인터넷 등 주장을 펼칠 수단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장송곡, 운동가요 등을 반복해서 재생하는 것은 폭력일 뿐”이라며 “과도하고 반복적인 시위 소음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엄격히 제한할 수 있도록 집시법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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