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생산량 57% 달해도 시설 부족
가공제품 지난해 2.1% 수준에 그쳐
최근 메밀건면국수-커피 개발 추진
스토리텔링 연계한 홍보 전략 필요
봄과 여름 사이 제주의 들녘을 메밀꽃이 하얗게 수놓는다. 제주지역이 메밀 주산지이면서도 부가가치를 높인 가공이나 제품 생산은 미미한 실정이다. 농업회사법인 제주오라 제공
1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회수동지역 왕복 4차로 도로변 농지에 눈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게 수놓은 메밀꽃이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일부 관광객은 차를 세우고 메밀꽃 배경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이곳은 감귤을 재배하던 농지를 메밀밭으로 조성한 곳이다. 여기서 제주국제공항으로 가는 도중인 서귀포시 안덕면에도 메밀꽃이 무리 지어 피었다.
요즘 제주의 들판은 메밀꽃으로 가득하다. 제주시 조천읍 와흘메밀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 2일 시작한 메밀문화제가 18일까지 열린다. 제주시 오라동에서도 99만여 ㎡ 들판을 하얗게 물들인 메밀 축제가 25일까지 이어진다. 메밀 하면 이효석 작가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 봉평을 떠올린다. 이 작품에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는 표현은 메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지금까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소설 덕분에 봉평은 메밀로 유명하지만 정작 국내 최대 메밀 주산지는 제주지역이다. 제주지역의 2021년 메밀 재배 면적은 1426㏊, 생산량은 1127t으로, 전국 전체 재배면적 2148㏊의 66.4%, 생산량은 1976t의 57.0%를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으로 보면 경북 297t, 강원 155t에 비해 훨씬 많다.
봄 메밀은 4∼5월 파종하면 5월 하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6월 말에서 7월 초에 수확하고, 가을 메밀은 8월에 파종하면 9∼10월 꽃이 피는데 태풍을 만나면 수확량이 줄어드는 단점이 있다.
메밀 주산지임에도 제주지역에서 메밀 가공은 수월하지 않은 실정이다. 수확한 메밀의 껍질을 깎아 내거나 가루로 만드는 도정 시설이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 도정 시설이 고장 나면 수리에 거액의 비용이 들어 일부 공장은 가동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메밀을 가공한 제품은 72개(지난해 12월 기준)로 전국 3350개의 2.1%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대부분 메밀쌀, 메밀가루 등 1차 가공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제주산 메밀 상당량은 강원에서 가공된 뒤 유통되는 실정이다.
제주도는 메밀을 특산화하기 위해 최근 성산과 표선, 한림, 애월, 안덕 등 6곳에 봄가을에 재배가 가능한 국산 품종인 ‘양절 메밀’ 채종단지 30㏊를 조성했다. 생산성이 낮고 잡초가 섞인 외래종, 가을에만 재배가 가능한 재래종 메밀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품종으로 개발한 것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실용적인 제품 개발을 위해 외부 공모를 통해 메밀국수건면, 메밀커피를 선정했다”며 “올해 말 시제품이 나오면 제주메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제주지역과 인연이 깊다. 제주 무속신화에서 농사의 여신인 ‘자청비 신화’에 등장하고, 조선의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재배 기록이 있다. 메밀 원산지는 티베트의 산골로 돌이 널려 있고 메마른 지역으로 알려졌다. 토양이 적고 물이 쉽게 빠지는 화산섬 제주와 비슷하다. 제주지역에서는 메밀로 떡과 묵을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메밀칼국수, 빙떡, 메밀오메기떡, 메밀 뼈국 등의 향토음식 재료로 쓰이고 있다.
문승환 농업회사법인 제주오라 대표는 “최근 인지도가 높아진 제주 메밀이 수요 창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이 필요하다”며 “강원에 비해 즐길거리, 볼거리가 부족한 제주의 소규모 메밀 축제를 육성하는 정책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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