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만 낸 신상공개”…돌려차기 남성 신상 19년 뒤에야 볼 수 있다

  • 뉴스1
  • 입력 2023년 6월 14일 14시 34분


부산 서면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른 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가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공판이 끝난 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심경을 밝히고 있다. 2023.6.12/뉴스1
부산 서면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른 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가 1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공판이 끝난 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심경을 밝히고 있다. 2023.6.12/뉴스1
“피고인에 대한 정보를 10년간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공개하고 고지한다.”

지난 12일 ‘부산 돌려차기’ 남성 A씨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명령한 내용이다. 최근 유튜버의 ‘사적 제재’ 논란이 불거지면서 A씨의 신상공개 여부는 대중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재판부가 10년간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을 내렸지만, 19년이 지나야 A씨의 얼굴과 이름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반쪽짜리 신상공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1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고법 형사2-1부(최환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살인미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A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정보통신망을 통한 정보 공개·고지를 명령했다.

정보통신망을 통한 정보 공개·고지는 여성가족부 등이 관리하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성범죄자의 얼굴, 연령, 주소, 신체 정보, 전과 등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처럼 A씨의 신상공개 방식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신상 공개된 또래 여성 살인범 정유정과는 다르다. A씨는 피의자 신분이었을 때 중상해죄를 적용받았기 때문에 신상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해 5월22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해 가해 남성 A씨가 피해자를 발로 차고 있다.(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 제공)
지난해 5월22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해 가해 남성 A씨가 피해자를 발로 차고 있다.(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 제공)
현행법상 피고인 신분에서 신상공개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A씨의 성범죄가 항소심 들어 뒤늦게 유죄로 인정됐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즉 정보통신망을 통한 신상공개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사이트에 공개된 신상을 언론이나 제3자가 공개하는 행위는 불법이라 개인이 직접 홈페이지에서 A씨의 정보를 검색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신상공개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성범죄자 알림e 이용률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신상정보등록 및 공개제도의 실효성 평가연구’ 논문에 따르면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를 알고 있고 접속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전체(2450명)의 13.6%로 나타났다. 그중 주기적으로 사이트에 접속한 응답자는 78명에 불과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출소 이후에야 A씨의 신상 공개가 가능하다. A씨가 지난해 돌려차기 범행으로 구속 상태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19년이 지나서야 국민이 A씨의 신상을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19년이 지나서도 돌려차기 사건이 과연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군다나 반성은커녕 억울하다는 핑계뿐인 A씨의 반성문만 보더라도 대법원 상고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재판이 장기화할 우려도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성범죄자 알림e 신상공개는 형을 확정받고 출소한 사람만 대상이 된다. 교정시설 복역 후 출소하는 당일에 공개된다”며 “성범죄자 주소 인근에 사는 19세 미만의 자녀를 둔 가정에는 자동 우편·휴대전화 앱 고지가 된다”고 말했다.

미성년자 자녀를 둔 가정만 고지받을 수 있고 이외 가정에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번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20대 여성인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여성 1인 가구는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우편 고지는 재범 위험성을 줄이는 데 큰 몫을 한다. 김 연구원이 발간한 논문 조사에 따르면 우편 고지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 595명 중 506명(84.9%)이 ‘신상정보 고지가 성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어떤 행동·조치를 할지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김 연구원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높은 세대는 20대 여성이다. 우편 고지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돌려차기 피해자 측 남언호 변호사는 “피해자가 원했던 신상공개 방식과 차이가 있고 우편 고지도 모든 가구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재판부의 공개 명령에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신상공개 대상이 되려면 범죄의 잔인성과 중대성이 요구되는데, 얼마나 잔인한지, 중대한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수사기관마다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우려가 크다”며 “현행 신상공개 제도가 헌법의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헌법소원 심판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법 개정 등 노력 없이는 돌려차기 남성에 대한 신상공개는 곧바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상공개에 법적 보완책이 필요하다. 살인, 강간 등 흉악범죄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신상공개를 실시하고, 이외 범죄에 대해서만 심의위원회를 열어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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