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원유, 달러로만 거래 가능… 기축통화로서 가치-신뢰 높여
최근 막대한 빚으로 ‘디폴트’ 위기… 미국, 부채 한도 늘리며 한숨 돌려
중국-러시아, 위안화로 에너지 교환… 전 세계 장악한 달러 패권에 도전
5월 세계 경제는 위기를 맞이할 뻔했습니다. 바로 미국의 ‘디폴트’ 위기인데요. 디폴트란, 한 국가가 진 빚을 더 이상 갚지 못한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5월 28일 미국 의회가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 확장에 동의함으로써 위기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미국 정부가 막대한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이 빚을 지다니, 어찌 된 얘기일까요?
그 이유는 미국의 달러 때문입니다. 미국의 화폐인 달러는 세계 경제의 중심입니다. 달러는 마치 금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습니다. 달러와 같은 화폐를 기축통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자국의 필요에 따라 달러를 발행해 왔습니다. 미국 정부가 달러를 발행하고 전 세계에 유통하는 것은 한마디로 미국 정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빚을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 빚이 30조 달러(약 4경 원)가 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굳건합니다. 오늘의 세계지리 이야기는 달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달러’는 원래 체코에서 비롯
오늘날 달러라는 화폐 단위를 쓰는 나라는 캐나다, 홍콩,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수리남, 자메이카, 피지, 대만 등 다양합니다. 그중 미국 달러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정작 달러라는 단위는 미국과 전혀 상관없는 체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체코 남부의 보헤미아 지방에는 성 요하힘이라는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보헤미아 지방에서 사용하던 독일어에서는 골짜기를 ‘탈’(Das tal)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곳은 ‘요하힘스탈’(요하힘의 골짜기)라고 불렸죠. 이곳에 은광이 개발되고 은화가 주조되면서 그 은화의 이름을 ‘요하힘스탈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줄여서 ‘탈러’라고 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탈러라는 단어는 전 세계로 전파돼 ‘달러’로 알려졌습니다. 달러의 시작은 체코지만 그 달러가 활짝 꽃 피운 곳은 바로 미국입니다.
달러가 전 세계 기축통화로 성장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은 세계 질서의 새로운 중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달러를 세계 경제의 중심 화폐로 만들기 위해 한 가지 약속을 합니다. 바로 ‘금 태환 정책’입니다. 달러를 가져오면 거기에 상응하는 금으로 교환해 준다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확장에 따라 달러 발행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결국 미국 정부는 달러와 금의 교환을 보증하는 금 태환 정책을 포기합니다. 달러의 가치는 폭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승부수를 던집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적 보호를 약속하는 대가로 사우디 원유는 무조건 달러로만 거래하도록 협정을 맺은 겁니다. 이제 중동 원유를 사야 하는 전 세계 모든 국가는 달러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달러의 가치와 신뢰성은 다시금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달러가 곧 페트로(petro·석유) 달러가 된 것입니다.
● 중국-러시아, 달러 패권에 반기
하지만 최근 반대하는 흐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생산 대국인 러시아와 에너지 소비 대국인 중국이 서로 석유와 천연가스를 거래하는 데 있어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원유 결제에 있어 위안화 사용을 고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달러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화폐는 해당 국가에서만 사용됩니다. 그러나 달러는 여러 국가에서 화폐로 사용됩니다. 미국이 가진 힘과 신뢰가 달러를 여러 국가의 화폐로 사용되게끔 한 것입니다. 달러를 공식 혹은 비공식적 화폐로 사용하는 국가에는 파나마, 엘살바도르, 에콰도르, 짐바브웨, 동티모르, 캄보디아, 캐나다, 베트남 등이 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는 자국의 화폐인 리엘이 버젓이 존재함에도 국민들이 오히려 달러를 더 선호합니다.
경제적 상황이 불안정한 저개발 국가 중에는 달러가 자국의 화폐를 대체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를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북한마저도 달러를 선호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대외적으로 미국을 ‘양키’라며 미워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국 화폐인 원화보다 달러를 더 선호합니다. 달러 파워는 사상과 지리적 대립을 초월해 세계 어디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사실상 세계의 공통 화폐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달러라이제이션에 반대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달러 선호 현상이 줄어들고 각 지역의 공용 화폐나 미국 아닌 특정 국가의 화폐가 더 선호되는 현상인데요. 이를 디달러라이제이션(De-Dollarization)이라고 합니다. 디달러라이제이션의 가장 선봉에 선 국가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화폐인 위안화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특히 중국은 우방인 러시아 및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손잡고 국제 무대에서 미국 달러에서 벗어나 위안화 사용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교두보인 튀르키예 또한 러시아와의 에너지 거래에 있어 미국 달러가 아닌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를 더 선호하겠다고 러시아와 협정을 맺었습니다. 특히 블록체인이나 QR코드 페이와 같은 결제 기술의 진보에 따라 국가별 공식 화폐의 중요성이 점차 낮아지는 현상 역시 미국 달러 패권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가 현금 없는 미래를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 미래에도 여전히 달러가 세계 경제의 중심일지에 대해 누구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도 미래에도 해당 국가의 힘이 곧 해당 화폐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대의 세계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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