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7시 반경 인천 강화도 분오항 인근 각시암. 기자가 탄 통통배가 다가가자 바위섬에 빼곡히 앉아있던 저어새 50여 마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 사이로 자리를 지키는 저어새들이 보였다.
“둥지를 튼 어미 새들이에요.”
배를 암초에 완전히 붙여 정박하자 그제야 새끼를 두고 가고 싶지 않던 어미 새들이 자리를 비켰다. 국립생태원 산하 국립멸종위기종보전센터 연구원 5명이 서둘러 섬에 발을 디뎠다.
이들은 새끼 새들을 잠시 납치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700㎡의 작은 섬 평평한 바위나 바닥 이곳저곳에 둥지가 보였다. 어느 둥지에는 둥그스름한 알 서너 개가, 어느 둥지에는 짧은 회색빛 털이 보송보송한 갓 태어난 새끼들이 보였다. 어미 새들은 여전히 상공을 맴돌며 울어댔다.
“미안해. 네 새끼 금방 다시 데려올게. 그 대신 선물 두고 간다.”
연구원들이 배에 싣고 온 마른 고춧대와 수풀 한 움큼을 내려놨다. 둥지 재료가 부족한 척박한 바위섬에서 둥지를 보강할 재료들을 가져다준 것이다.
이곳 각시암에선 저어새 40여 쌍이 둥지를 틀고 번식하고 있다. 주걱 모양 부리를 쉴 새 없이 저어 먹이를 잡아먹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자 국내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생물) 및 천연기념물이기도 하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서해안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하지만 1988, 1989년 조사에서 전 세계에 288마리만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 서식지인 습지 감소, 농약 사용 등이 이유로 꼽혔다.
이에 1994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험도를 평가하는 ‘적색목록’에서 저어새를 ‘심각한 위기종’(CR·야생 상태에서 멸종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음)으로 분류하며 각국에서 보호 활동이 펼쳐졌다. 특히 저어새는 한국이 고향이라 할 정도로 전 개체의 90% 이상이 서해안에서 번식하고 있어 우리의 노력이 중요하다.
● 인공섬 짓고, 수몰 위기 알 구출까지
“무게 1.715kg, 부리… 111mm. 열심히 커야 물고기도 잡아먹지?”
이날 배에 데려온 개체들은 부화한 지 30~40일 차 8마리다. 제법 저어새 모양을 갖췄지만 아직 부리나 날개는 다 성장하지 않은 상태다. 멸종위기종보전센터 황종경 연구원이 새끼 새에게 줄자를 갖다댔다. 새들은 이날 성별, 무게, 머리·부리·날개·다리 길이를 재는 신체검사를 받았다. 다리에는 영어 대문자와 숫자가 조합된 인식표를, 등에는 무게 20g 수준의 위치추적기를 달았다. 태양열로 충전하며 3년가량 지나면 끈이 삭아 저절로 떨어지는 추적기다.
유독 손길을 거부하며 몸부림치던 녀석에게는 ‘78K’라는 이름표가 붙여졌다. 권인기 연구원은 “국내에 새로운 서식지가 있는지, 최근 해상풍력 발전 등이 활발한 만큼 국가 간 이동 시 문제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두 시간쯤 후 연구원들이 새끼 새들을 데려다주러 다시 각시암으로 향했다. 어미 새들은 연구원들이 두고 온 나뭇가지와 수풀로 이미 둥지를 튼튼하게 보강해 두고 새끼 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둥지가 좁아 밖에 떨어져 있던 알 2개는 고이 가져와 서울대공원에 인계했다. 2019년 장마철에 수몰될 위기에 처한 알 9개를 가져와 5개를 인공 부화에 성공시킨 적이 있다.
인천 영종도 북단의 수하암에 둥지를 틀던 저어새들은 최근 ‘새 집’을 얻었다. 2013년 영종도 개발이 시작된 후 수하암을 찾던 저어새들이 점차 자취를 감췄다. 이에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등이 2019년 수하암과 500m 떨어진 지점에 흙과 바위로 약 700㎡ 규모의 대체 서식지를 마련했다. 개발로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새들에게 인공섬을 지어준 것이다. ‘영종 저어도’란 이름을 갖게 된 이 바위 인공섬에는 3년째인 지난해 처음 저어새가 번식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이같이 복원 및 보전 활동이 이어지며 저어새 개체군은 꾸준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2000년부터는 IUCN 적색목록에서 ‘심각한 멸종위기’보다 한 단계 아래인 ‘멸종위기종(EN)’으로 조정됐다. 올 1월 조사 기준 전 세계 총 6600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12월 국내 저어새 번식개체군 조사에서도 총 1981쌍이 관찰됐다.
권 연구원은 “개체 수가 많이 늘었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서식한다고 보기에는 적은 숫자다. 그래도 추세를 이어간다면 2027년 멸종위기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기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총 282종이다. 1989년 지정한 92종의 3배가 넘는다. 환경부는 2018년 ‘야생생물종합보전계획’을 내놓고 복원 시급성이나 가능성 등을 평가해 2027년까지 25종을 우선복원종으로 지정한 바 있다.
이처럼 멸종위기 야생생물 복원에 나서는 이유는 생물다양성이 우리 생태계 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사는 생물의 다양한 정도는 최근 기후위기와 함께 가장 주목받는 환경 이슈 중 하나다. 동식물 종이 하나씩 없어지면 결국 인간을 포함해 지구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 벌의 ‘집단 실종’으로 농작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열매를 먹고사는 또 다른 동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 모래주사 방류… 추억의 소똥구리 돌아올까
동화나 노래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만큼 친숙했던 소똥구리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달 국립생물자원관은 소똥구리가 ‘지역 절멸(멸종)종’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동물 똥을 분해하는 익충(이로운 곤충)인 소똥구리는 소를 방목하던 시절에는 어디서나 흔히 보였다. 소똥구리는 소똥이나 말똥 등을 지름 3, 4cm로 둥글게 경단을 만들어 굴리면서 먹이로 삼거나, 경단 안에 알을 낳아 번식한다. 국내 자생종 소똥구리의 공식 관찰 기록은 1971년이 마지막이다. 1970, 80년대 흔히 보던 소똥구리는 긴다리소똥구리나 보라금풍뎅이 등으로 자생종이 아니다.
소똥구리는 도시가 개발되고 농촌은 공장형 축사로 바뀌면서 먹을 똥이 없어지자 사라졌다. 도시에는 동물의 똥이나 풀밭이 없고, 사료나 항생제를 먹인 동물의 똥은 분변이 묽어 경단을 만들어 굴리기가 어려웠다. 환경부는 2017년 소똥구리 복원 사업을 위해 ‘해외에서 소똥구리 50마리를 들여오는 사람에게 5000만 원을 주겠다’는 입찰공고를 냈다. 공고가 ‘소똥구리를 발견하면 상금을 준다’로 와전되면서 각종 제보가 쏟아졌다. 하지만 모두 소똥구리가 아니었던 것으로 판정됐다.
결국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2019년 몽골에서 소똥구리 200여 마리를 들여와 지금까지 증식·복원에 필요한 연구를 진행했다. 최적의 짝짓기 환경을 위한 암수 합사 비율이나 산란과 부화율이 가장 높아지는 온도와 습도 등을 연구했다. 어려웠던 부분은 먹이이자 번식에 필수적인 ‘똥 구하기’였다. 제주에서 농약에 노출되지 않은 말 분변을 운송해 오거나, 퇴역한 경주마를 기증받아 분변을 확보하기도 했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조만간 다시 소똥구리를 볼 수 있게 될 예정이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김황 연구원은 “알에서 성체까지 생존율이 자연 상태에서는 40% 정도인데, 관리를 통해 7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동면에 들었던 소똥구리들은 지난달 잠에서 깨어나 약 한 달 정도 먹이를 먹으며 영양분을 보충했다. 최근에는 6, 7월 번식기를 맞아 암수가 함께 먹이용보다 더 밀도 있고 탄탄한 경단을 굴리며 산란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짝짓기를 통해 태어난 개체들은 8월 말~9월 사이 방사할 예정이다.
앞서 4월 멸종위기 I급 민물고기 모래주사 역시 1년에 걸친 인공증식을 거쳐 복원과 방류에 성공했다. 잉엇과인 모래주사는 섬진강과 낙동강에 서식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1998년 처음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됐다가 2017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상향 지정됐다.
이번에 방류된 모래주사는 인공증식 기술을 이용해 태어났다. 전북 임실군 섬진강에서 채집된 개체를 연구진이 인공채란으로 수정란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국립생태원은 “이전에도 복원 시도는 있었지만 인공증식으로 치어를 방류까지 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치어는 1년 이상 길러 몸길이 약 5~6cm로 성체(몸길이 10~12cm)에 가깝게 자라났다. 방류를 앞두고는 태어나서 실내에서만 자란 개체들의 자연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포식자 인지와 회피 방법, 자연 먹이 섭식, 유영 능력 향상 등 자연성 증진 훈련을 받았고 처음 개체를 채집했던 임실군 섬진강 유역에 방류했다.
국립생태원은 올해 또 다른 멸종위기 I급 민물고기인 꼬치동자개와 좀수수치를 함양군과 고흥군에 방류할 계획이다.
● “소똥구리, 반달곰과 함께 살 준비됐나요”
오랜 연구와 노력을 들여 성공적으로 복원과 방사를 마친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개체군뿐만 아니라 서식지의 복원과 보전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아직 소똥구리 방사지를 협의하고 있다. 방사한 소똥구리가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방목초지(初地)가 있고, 가축에게 인공 사료나 항생제 등을 주지 않는 곳이 있어야 한다. 소똥구리가 멸종에 이르게 된 환경이 바뀌지 않는 이상 서식지 찾기도 어려운 셈이다. 현재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소똥구리 방사지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관리가 가능한 곳을 찾고 있다.
2006년 종복원 사업 시작 이후 대표적인 복원 및 방사 성공사례로 꼽히는 반달가슴곰도 여전히 고민을 안고 있다. 최근 개체 수가 증가하며 인간과의 접점도 늘어나면서다.
14일 고속도로를 건너 경북, 경남, 충북 등을 넘나들어 반달가슴곰계의 ‘콜럼버스’라는 별명을 얻었던 ‘오삼이’(코드명 KM-53)의 폐사 소식이 전해졌다.
2015년 1월 태어나 10월 지리산에 방사된 오삼이는 세 살이 되던 2017년 6월 지리산에서 100km나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됐다. 처음에 국립공원공단은 주민 안전과 서식지 안정 등을 고려해 오삼이를 포획해 지리산으로 옮겼지만 오삼이는 고속도로에서 버스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까지 두 번이나 수도산으로 돌아가며 유명해졌다. 당시 복합골절로 수술을 받는 등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특유의 호기심은 잃지 않았다.
올봄에도 동면에서 깨어난 후 충북 보은, 경북 상주 등 곳곳에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3일 상주 인근 민가로부터 100m 이내로 접근하는 것이 목격되면서 안전 사고를 우려해 포획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마취가 된 상태에서 이동하다가 계곡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후 응급처치를 시도했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오삼이는 2020년 6월 충북 영동에서 벌통을 부수고 꿀을 먹어치우는 등 작은 ‘말썽’들을 피운 적이 있다. 지난해 환경부는 “해당 개체의 이동 경로를 24시간 관찰하고 있으며, 경로 인근 주민들에게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한 요령과 주의사항을 전하고 있다”며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필요시 개체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복원과 방사를 거쳐 야생에 적응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인간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다시 고민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김정진 국립공원공단 생태복원부 연구원은 “사실 네 발 달린 동물이 어딘들 못 가겠나. 야생동물을 복원·방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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