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칭찐’ 이수영 대표(사랑의 징검다리 봉사단장)
군부대·홀트학교·수해현장 등 수요일 자장면 봉사
‘책 읽는 병영문화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자장면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중국집 대표를 만났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의 자장면을 전달하러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 그에게 따로 있을까. 중국집 ‘칭찐’ 이수영 대표(62)는 봉사의 원동력에 대해서 생각 외로 단순한 이유를 말했다. 단지 “즐거워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이 대표에게는 각별한 사이를 가진 ‘사람’이 정말 많다. 특히 ‘꿈나무의 집’에는 이 대표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참 많다고 한다. ‘꿈나무의 집’은 중증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이다. 그곳에서 한 중증 장애인 친구는 이 대표만 가면 항상 자신을 알아보고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표정이 유독 밝아진다.
이 대표는 “복지시설 관계자분이 하신 말씀이 있다”라며 “그 친구가 몸을 흔들면서 반가워하는 행동을 취할 때는 딱 2번밖에 없다고 한다. 그 친구의 엄마가 방문했을 때 그리고 나와 우리 봉사단(사랑의 징검다리 봉사단)이 방문했을 때다”고 했다. 이 대표는 ‘꿈나무의 집’과 2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오며 온정을 나누고 있다.
그는 “회원들끼리 봉사를 하고 나면 하늘이 달라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봉사를 오래 하다 보면 이제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항상 보면 힘이 난다”라며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이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대표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 사람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에게 의미가 남았던 봉사활동 중의 하나는 홀트복지타운에서 만나 결혼식을 올린 장애인 부부에게 자장면 봉사를 한 것이다. 이 대표는 이 부부의 결혼식 날 모든 하객들에게 직접 만든 자장면을 대접했을 때 정말 의미가 깊었다고 전했다. 160인분의 짜장면을 나눔 했고 지인들로부터 지원받은 반찬이나 찹쌀떡을 하객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가장 소외되어 있고 절실한 손길이 필요로 하는 군부대에 자장면 전달”
이 대표는 또 정기적으로 군 장병들을 위해 자장면 위문행사를 간다. 소외되어 있는 장병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보통 외진 군부대로 향한다. 그는 “군부대의 경우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고성이나 강원도에 있는 부대로 자주 간다”며 “병영 안에서는 자장면을 접하기 힘들기 때문에 위로가 절실해 보이는 군부대로 가서 봉사를 하는 편이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장병들이 자장면을 먹으면서 정말 즐거워하고 위문을 처음 받아보는 친구들은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한다”라며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병들이 자신들도 제대하고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할 때 큰 희열과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또 그는 “장병들이 그런 약속을 하면 우리가 추구했던 그런 봉사를 하고 있구나”고 위안 받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봉사할 때 자장면의 재료는 더 좋은 것들로 사용하고 아낌없이 정성을 담기로 유명하다. 식재료 물가가 오른 상황에 부담스럽진 않을까. 그는 “음식점을 하고 있으니 가능하다. 부담스럽진 않다”라며 “재료를 달리 쓰는 이유가 봉사하는 음식은 무료로 제공을 하지 않느냐. 봉사 음식이 빈약하면 안 좋게 느껴질 수 있다”라고 답했다.
이어 “‘공짜로 주는 음식이 그렇지 뭐’ 이런 생각을 안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라며 “그러다 보니 고기도 많이 넣고 재료도 더 좋은 걸 사용한다. 봉사하는 걸 직접 먹어보면 정말로 더 맛있다”고 웃었다. 그는 자장면 봉사를 할 때 최소 40인분에서 최대 800인분까지 제공을 한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자장면 봉사뿐만이 아닌 나눔과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만들고 있다. ‘책 읽는 병영문화 만들기 프로그램’도 이 대표가 만들었다. 군부대나 교도소 그리고 홀트학교 등 다양한 곳으로 책을 전달한다. 여태까지 보낸 책 수량이 3만여 권이 넘는다. 보통 다른 곳에서 기증받은 책들을 전달하는데 최근에는 강원도 최전방 12사단에 1000여권의 책을 전달했다.
그가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계기는 부대를 출입하면서 도서관에 책이 너무 부족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군인들 여가시간에 독서를 권장하고 정서 함양도 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라며 “그때부터 명칭도 내가 정하고 프로그램을 고민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봉사원들끼리 먼저 집에 있는 책을 기증하면서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자원봉사센터에 광고를 하면서부터는 개인이 새 책을 기부하겠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 대표는 “같은 책이 오랫동안 꽂혀있다 새 책으로 바뀌면 군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때 정말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강원도 오지에 있는 군부대로 보통 책을 전달하러 간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절실히 우리를 필요로 하는 부대로 간다”라며 “강원도 최전방에서 고생하는 장병들을 위해 자주 위문을 가고 있다”고 전했다.
“봉사를 하러 가서 자장면을 만들 때는 표정이 다르다더라”
이 대표에게는 봉사단원들과 십시일반으로 마련한 푸드트럭이 있다. 이 트럭과 함께 매주 수요일에 사랑의 자장면을 전달하러 나선다. 그는 사랑의 징검다리 봉사단을 설립한 단장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봉사를 가는 것 자체가 즐겁고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단원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봉사를 하면서 자장면을 만들 때 표정이랑 식당에서 자장면을 만들 때 나의 표정이 무척 다르다라는 것”이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자장면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했다.
봉사를 정식으로 시작한 것은 2001년도지만 이 대표가 가족들과 소소하게 봉사를 시작한 것을 돌이켜보면 98년도부터다. 20년을 훌쩍 넘는다. 처음에는 두세 명이서 시작한 봉사였지만 지인들에게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인원이 늘어났다. 현재 사랑의 징검다리 봉사단원들은 25명이다. 이들은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생하는 단체다.
이 대표가 봉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뭘까.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 대표는 “연대보증을 선 게 잘못된 경험이 있다. 무일푼이 된 후 일산에 발을 들였다”라며 “중식당 일을 시작하며 밑바닥 생활이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재밌었다”고 말했다. 당시에 그가 배달을 갔을 때 자신보다 훨씬 어려운 사람이 많이 만났다고 한다.
그때 이 대표는 “세상을 헛살았구나. 나중에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대표는 힘든 시기에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며 자장면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이 대표는 가족들을 설득해 자장면 봉사를 시작했다.
이 대표가 가장 맨 처음으로 봉사를 시작한 곳은 군부대였다. 그가 군부대에서 자장면 봉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가 봉사의 첫 기억이 군부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를 기점으로 장애인 시설, 수해 현장 등으로 자장면 봉사를 가고 있다. 이 대표는 “첫 봉사를 시작할 시기에는 장비가 없어 군부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무쇠솥과 같은 군 장비를 지원받은 덕분에 홀트학교(특수학교) 운동장에서 자장면 봉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내가 가진 유일한 자원이 자장면이었다. 그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이었다”라며 “누구든지 봉사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게 가장 큰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또 자장면 하나로 봉사를 시작하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수해 현장도 찾아가 자장면 봉사를 하는데 현장에서 힘쓰는 자원봉사자분들을 위한 자장면 봉사를 한다. 그는 몇 년 전 고성 산불이 났을 때나 강원도에 폭설이 내렸을 때도 현장을 찾아가 자장면 봉사를 했다.
이 대표는 수재민뿐만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한테 봉사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당신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데 나도 당신들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라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이어 “같이 봉사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그분들을 더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수학교 학생들 병영 체험 봉사…새로운 봉사 시도가 내 삶의 낙”
자장면 봉사를 하는 일 외에도 삶의 낙을 어디서 찾는지 그리고 여가시간에 무엇으로 힐링을 하냐는 물음에 이 대표는 또 새로운 봉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좋은 지인들. 그러니까 인적 인프라가 많이 생겼다”며 “그런 지인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었냐면 바로 홀트학교에서 병영체험이라는 것을 만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가 만든 병영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홀트학교의 친구들은 일반인과 똑같이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1박 2일간 병영체험을 할 수 있게 됐다. 다운증후군과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가장 선망하는 대상은 바로 군인, 경찰, 소방관과 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군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소에 들어가서 선서도 하고 똑같은 훈련을 받게한다”며 “그런데 화생방 빼고”라고 웃었다.
이 대표는 장애인 친구들에게 자신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직접 체험시켜주면서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그게 바로 그 친구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어 학부모님들을 초청해서 이 친구들이 병영체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줬더니 울음바다가 됐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우리애가 저렇게 잘하는데 하지 마. 다쳐라는 말을 왜 했을까’라고 후회하는 부모님들이 많다”고 했다.
이 대표는 이런 새로운 활동들을 하는 것이 개인적인 삶의 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가족이 힘들다”라며 “그런데 그 영상을 보고 힘들었던 것들이 눈 녹듯이 녹더라고 얘기하는 부모님들의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함께 봉사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
이 대표는 봉사 때문에 새로 만나게 된 인연도 정말 많다. ‘20년 지기’인 이정표 파주 경찰서 경감(58)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적발이 된 직원 때문에 우연히 만났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직원 벌금을 내주며 이 대표는 봉사를 제안했고 그 뒤로 쭉 인연이 됐다. 그는 인연이 깊어 보이는 이정표 경감에 대해 “봉사를 오랫동안 함께했기에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안다”라며 “함께 봉사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라고도 했다.
이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와 꿈이 있다면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소외된 곳을 찾아 더 먼 곳으로 가는 것이다. 현재는 인프라가 열악한 강원도로 지원을 자주 가고 있지만 국내 곳곳에 더 많은 곳을 찾아가 사랑의 자장면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는 군 장병들이 사랑을 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나도 봉사를 해야겠다’라는 마음도 가질 수 있도록 은연중에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작은 푸드트럭을 더 큰 차량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탕수육이나 짬뽕 같은 음식도 봉사 메뉴로 추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외부에서 지원을 받으면 제약이 많다”라며 “봉사 의미도 퇴색되고 타성에 젖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쉽게 하는 봉사보다는 스스로 자생하는 단체라는 점에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 대표에게 봉사는 ‘행복 바이러스’ 그 자체였다. 그는 “봉사는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달린 것 같다”라며 “자영업 하시는 많은 분들도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한다. 조금만 희생하고 또 무엇보다 남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봉사를 하다 보면 스스로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기분이다”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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