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지사 시절 승선 체험용 제작
비 새고 흔들려 방치됐다 폐기 앞둬
괴산 43t 가마솥-광산구 7m 우체통
전국 곳곳에 애물단지 전락 조형물
경남도와 거제시가 약 16억 원을 들여 만든 120t짜리 대형 거북선 모형이 12년 만에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의 보여주기식 업적 쌓기가 애물단지가 된 사례가 재연됐다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 154만 원에 낙찰됐다가 결국 폐기 수순
19일 거제시에 따르면 거제시 일운면 조선해양문화관 광장에 설치된 거북선 모형은 지난달 16일 입찰 8차례 만에 60대 여성에게 154만 원이란 헐값에 낙찰됐다.
낙찰자는 길이 25.6m, 폭 8.67m, 높이 6.06m에 달하는 이 배를 “자신이 소유한 땅으로 옮겨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송 비용이 1억 원에 달하는 데다, 이송 예정지가 한려해상국립공원 구역이다 보니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못 옮기는 상황이 됐다. 거제시 관계자는 “계약상 25일까지 거북선을 인수하지 않으면 낙찰 계약은 해지된다”며 “태풍으로 거북선이 쓰러질 가능성도 있어 26일 이후 폐기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배는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이 경남도지사 시절 역점 사업으로 진행했던 ‘이순신 프로젝트’ 일환으로 2011년 완성됐다. 당초 승선 체험 등 관광용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완성하고 보니 흔들림이 심하고 비가 새 관광객을 태우지 못하고 수년째 방치됐다. 제작 업체가 국내산 ‘금강송’을 쓰겠다는 계약을 어기고 80% 이상 외국산 목재를 쓴 것이 드러나 업체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박완수 경남지사는 “거북선이 어떤 경위로 제작돼 매각됐는지 그 과정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려 현재 거제시 등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 중이다.
● 밥 못 짓는 43t 가마솥, 쓰레기통 된 7m 우체통
애물단지로 전락한 대형 조형물은 그 밖에도 전국 곳곳에 있다.
충북 괴산군이 2005년 7월 5억 원을 들여 만든 초대형 가마솥은 현재 괴산읍 괴산고추유통센터 철제 지지대에 걸려 있다. 둘레 17.9m, 지름 5.7m, 높이 2.2m로 무게가 43.5t에 달한다. 괴산군은 당초 “군민 4만 명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밥을 짓겠다”고 했으나 가마솥이 워낙 크다 보니 밥이 아랫부분은 타고 윗부분은 안 익는 문제가 있어 실제로 활용되진 않았다. 세계 최대 가마솥으로 기네스북 등재도 신청했지만 호주의 비슷한 조형물보다 작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이마저도 실패했다.
괴산군 관계자는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 해도 이송 비용만 2억 원이 필요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광주 광산구에는 한때 세계 최대 크기였던 높이 7m의 ‘희망우체통’이 있다. 2009년 제작 후 2010년 1월 세계 최대 우체통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지만 2015년 10월 미국 일리노이주에 높이 9.5m짜리 우체통이 등장하면서 ‘세계 최대’ 타이틀을 내줬다. 이후 쓰레기가 쌓이는 등 사실상 방치되다 올 초 사용이 공식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치밀한 계획 없이 진행되는 지자체장들의 업적 쌓기용 사업에 대한 감시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지방의회 역할을 강화하고 각종 경제성 검토의 실효성을 높여 더 이상의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댓글 0